【투데이경제】 가격 그대로, 중량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정조준
【투데이경제】 가격 그대로, 중량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정조준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3.11.17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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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슈링크플레이션은 부정직한 판매 행위 규정
공지없이 슬그머니 중량 표기만 바꿔도 꼼수 지적
11월 말까지 한국소비자원, 주요 생필품 실태조사
이후 정부 주도 하에 구체적인 방안 마련 예고
지난 14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방문해 주요 품목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이날 추 부총리는 슈링크플레이션을 부정직한 판매 행위라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14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방문해 주요 품목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이날 추 부총리는 슈링크플레이션을 부정직한 판매 행위라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정부는 일부 기업들이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량만 줄이고 있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부정직한 판매 행위고 꼼수라며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기업들의 이같은 꼼수가 체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을 정조준하는 모양새다. 

슈링크플레이션, 부정직한 판매 행위

최근 일부 기업들의 꼼수 인상 움직임에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마트를 찾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슈링크플레이션은 일부 내용물을 줄이면 국민들의 제품 불신은 커질 것이라 우려하면서 이는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회사에서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양을 줄여 팔 경우 판매사의 자율이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들이 제품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 제품의 크기 및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결국 가격 인상의 효과를 내는 전략을 말한다. '줄어들다'라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다른 말로는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wnsizing)'이라고 부른다. 또 '인색하게 아낀다'는 뜻의 '스킴프'(skimp)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스킴플레이션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과거에 논란이 됐던 '질소 과자'가 슈링크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예다. 제과업계들은 과자가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질소를 넣어 파는 것을 이용해 과자의 양은 줄이고 질소를 가득 넣는 방식 방식으로 과자 봉지 크기를 유지해 논란이 됐었다. 당시 소비자들은 처음에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다 나중에야 과자의 양이 줄어든 것을 발견해 제과업계에 대한 불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추 부총리는 "소비자들은 부지불식간 양이 줄었는데 줄었는지를 모르고 소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가격 표시, 함량 표시, 중량 표시가 정확해야 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현행 법규에 따라서 엄정하게 제재를 받아야 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기관들과 함께 제품의 함량이나 중량 등이 바뀌었을 때 소비자들이 알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롯데칠성음료는 오렌지 주스 원액 가격이 오르자 델몬트 오렌지 주스의 과즙 함량을 100%에서 80%로 낮췄다. 그러면서 제품 하단에 '오렌지과즙으로 환원 기준 80%'라고 적었다. 하지만 제품에는 '배합함량:오렌지 100%'라는 문구가 먼저 표시돼 소비자 혼란을 불러왔다. (사진/뉴시스)
올해 롯데칠성음료는 오렌지 주스 원액 가격이 오르자 델몬트 오렌지 주스의 과즙 함량을 100%에서 80%로 낮췄다. 그러면서 제품 하단에 '오렌지과즙으로 환원 기준 80%'라고 적었다. 하지만 제품에는 '배합함량:오렌지 100%'라는 문구가 먼저 표시돼 소비자 혼란을 불러왔다. (사진/뉴시스)

슬그머니 중량 표기만 바꾸는 것도 꼼수

추 부총리에 이어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슈링크플레이션을 꼼수라고 저격했다. 지난 16일 정 장관은 물가 등 현안에 대한 백브리핑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식품을 사먹을 때 제품의 중량 표기까지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며 “100g 들어가던 것을 90g 들어간다고 충분히 공지를 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슬그머니 중량 표기만 바꾸는 것 자체도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이같은 꼼수를 사용하고 있다. 올해 롯데칠성음료는 오렌지 주스 원액 가격이 오르자 델몬트 오렌지 주스의 과즙 함량을 100%에서 80%로 낮췄다. 그러면서 제품 하단에 '오렌지과즙으로 환원 기준 80%'라고 적었다. 하지만 제품에는 '배합함량:오렌지 100%'라는 문구가 먼저 표시됐고 '오렌지과즙으로 환원 기준 80%'이란 문구와 나란히 표기돼 있어 소비자들이 혼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거세다.

또, 국내 젤리 시장 점유율 1위인 하리보는 지난 7월부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일부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중량을 20g 줄였다. 해태제과는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고향만두 2종의 중량을 각각 8.9g과 16g 낮췄다. 풀무원은 모짜렐라 핫도그의 중량을 400g에서 320g으로 줄였고 농심 양파링은 중량 84g에서 80g으로 4g이 줄어들었다. 오비맥주는 카스 맥주 묶음의 맥주 1캔 당 용량을 375m에서 370ml로 줄였다. 

기업들이 제품의 가격을 올리지 않고 이처럼 중량을 줄이는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생산 비용을 줄여 수익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특히 제품의 중량 변화보다는 가격 변화에 더 민감한 소비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격이 같아도 중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중량 당 가격은 상승한 것이 된다. 즉, 제품의 가격이 인상된 것으로 소비자들이 알아채기 힘들게 가격을 올렸다는 점에서 꼼수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셈이다. 

17일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이 서울 영등포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제33차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적극 대응을 예고했다. (사진/뉴시스)
17일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이 서울 영등포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제33차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적극 대응을 예고했다. (사진/뉴시스)

정부와 소비자단체의 역할 중요

이같은 슈링크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소비자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논의를 해 볼 것”이라면서도 그것보다 소비자단체가 먼저 나서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역시 소비자단체를 찾아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15일 홍두선 기재부 차관보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찾아 소비자단체 대표 등과 간담회를 열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는 소비자시민모임, 소비자공익네트워크, 한국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교육중앙회, 미래소비자행동 등 소비자단체 12곳을 회원으로 둔 협의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는 지난 10일 원재료 가격 하락을 소비자가에 적용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를 찾은 홍두선 차관보는 다양한 품목에 대한 물가 감시 활동을 하면서 꼼수·편법인상, 과도한 가격인상, 원가하락 요인의 미반영 등 소비자의 관점에서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정부가 서민 물가 폭등의 주범으로 라면을 지목하고 노골적으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가 하면 소주값 인상을 막기 위해 출고가 적정성 여부와 주류업계의 이익 구조, 독과점 여부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기업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을 늘리면서 기업들의 꼼수 방식은 계속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압박과 소비자단체의 감시 등을 피해 기업들이 값싼 재료로 바꿔 제품의 질을 낮출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17일 김병환 기재부 1차관은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물가관계차과회의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 신뢰를 저해할 수 있어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면서 우선 11월 말까지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신고센터를 신설해 관련 사례에 대한 제보를 접수할 예정이다. 이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알권리를 제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조수진 기자 hbs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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