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투데이] 홍콩H지수(HSCEI)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주가연계증권)가 반토막 나면서 금융권에 비상이 걸렸다. 은행권에서 판매된 약 16조원의 ELS의 절반이 내년 상반기 만기가 예정돼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 여기에 상품 가입자들이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면서 피해 금액 전액을 보상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금융당국이 조사를 예고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는 모양새다.
홍콩H지수 폭락에 대규모 손실 우려
지난 15일 홍콩H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26.86포인트(2.28%) 오른 5700.39에 거래를 마쳤다. 이처럼 홍콩H지수에 주목하는 이유는 곧 만기가 돌아오는 홍콩 ELS가 홍콩 H지수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ELS는 만기 내 지수와 종목 등 특정자산 가격이 특정 가격 아래로 하락하지 않으면 만기시 원금에서 약속한 수익률이 지급되는 파생상품이다. 이에 주가연계증권이라 불린다.
상품마다 차이는 있기만 ELS는 대체로 3년 만기 상환 시점에 발행 시점 지수의 60~70%를 웃돌면 상환이 가능하다. 즉 지수가 오를수록 수익을 낼 수 있고 가입 당시의 70%가 넘지 못하면 하락분만큼 손실이 나는 상품이라는 것이다. 내년 초 만기가 돌아오는 상품은 지난 2021년 상반기 홍콩H지수가 9000~1만2000선 사이에 판매가 된 상품들이다. 이에 현재 홍콩H지수가 6000선을 넘지 못해 원금 상환은커녕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판매 잔액은 20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은행 판매분은 15조8000억원으로 16조원에 가깝다. 은행 중에는 KB국민은행이 7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이 ELS상품을 팔았고 신한은행과 농협은행, 하나은행도 2조원 이상 판매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이 판매한 ELS 중 8조원 이상의 만기가 내년 상반기로 도래했다. 홍콩H지수가 지금 상태를 유지할 경우 투자액의 40%인 3조2000억원 이상이 손실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역대 최고의 금융 사고로 기록된 라임 펀드 피해액인 1조6000억원의 2배가 넘는 것으로 역대급 금융 사고가 될 전망이다. 다만 내년 상반기 중에라도 홍콩H지수가 급반등하게 되면 손실은 줄어들게 된다.
투자자들 불완전판매 주장...고령 투자자 다수
홍콩 ELS 사태가 커지는 이유는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고 있기도 하지만 투자자들이 홍콩 ELS에 대한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홍콩지수 ELS 피해자 모임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금융기관의 홍콩 ELS 불완전판매 의혹을 주장하면서 원금 전액을 보상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이들은 홍콩H지수가 2016년 녹인(knock-in·손실 발생 구간)에 진입한 적이 있는 위험한 상품임을 알고 있었는데도 고의로 고객들에게 설명하지 않는 등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어기고 부당하게 권유했다면서 가입 시 원금 손실 우려가 없고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 발생 구간은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은행이 전적으로 실적 올리는 데만 급급했다면서 불완전판매를 주장했다.
현재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투자업자가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할 때 설명의무와 적합성, 적정성, 불공정 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 및 과장광고 금지 등 6가지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은행이 원금손실인지에 대한 충분한 인지가 없이 상품을 판매했고 홍콩 지수 하락에 대한 설명없이 가입을 권유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의 고령 투자자에게 ELS 상품 판매가 몰렸다는 점이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에 따르면 5대 은행은 지난 11월 말까지 60대 이상 고객에게 6조4000억원이 넘는 넘는 홍콩 ELS 상품을 판매했다. 이는 전체 판매 잔액의 절반에 가까운 판매 규모다. 또 90대 이상의 초고령자에게 판매된 잔액도 100억원에 육박한다. 90대 이상의 초고령자에게 ELS상품을 판매한 은행은 하나은행이 74억10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농협은행이 9억3000만원, 국민은행이 6억6000만원 등이다.
금감원, 불완전판매 여부 조사 예고
이처럼 불완전판매에 대한 의혹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복현 금감원장은 은행권을 모은 자리에서 불완전판매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12일 서울명동 은행회관에서 이 금감원장은 8개 은행지주의 이사회 의장들과 정례 간담회를 통해 “지난 몇 년간 대규모 소비자 피해나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저하된 상황”이라며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 피해는 금융회사가 고객보다 단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잘못된 영업 관행을 가질 때 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 금감원장은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종합 국정감사에서도 홍콩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에 대해 "고위험 파생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판매한다는 것과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노년층에 판매하는 것이 적정한지 의문을 갖고 있다"면서 "피해자 보호뿐 아니라 다른 금융시장 상황과도 맞물려 있어서 ELS 손실 문제를 눈여겨 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홍콩ELS를 주목하고 있다면서 “ELS는 80~90% 확률로 정기예금보다 이자가 더 나오지만, 10~20% 확률로 50% 손해를 볼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상품이다”라며 “은행에서 ELS를 산 어르신들이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런 경우가 많으면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해 불완전판매 조사를 예고했다.
한편, 은행권은 홍콩H지수가 예상치 못한 하락세를 보이자 현재 홍콩 ELS 상품 판매를 모두 중단한 상태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지난해 홍콩H지수 편입 ELS 판매를 중단했고 농협은행은 지난 10월 원금비보장현 ELS 판매를 중단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홍콩H지수 편입 ELS 판매를 중단했고 하나은행은 이달 4일부터 홍콩H지수 기초 ELF와 ELT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