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의 세계’...유년의 사랑 노래
'클레오의 세계’...유년의 사랑 노래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4.01.03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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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있다. 유모가 세상 전부였던 여섯 살 소녀. 자신을 떠난 유모를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게 하고 싶은 소녀는 아버지를 졸라 타국의 유모의 집을 방문한다. 폭발하는 화산처럼 소녀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그해 여름 방학, 소녀의 여린 심상에는 거센 파도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클로에의 세계' 스틸컷, (왼쪽)클로에 역의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글로리아 역의 일사 모레노 제고,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클레오의 세계' 스틸컷, (왼쪽)클레오 역의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글로리아 역의 일사 모레노 제고,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상실의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이 깊을수록 상실의 상처는 더 아프기 마련. 여섯 살 아이가 겪는 사랑의 상실은 몹시 혼란스럽고 화가 나며, 정령 깊이를 알 수 없는 늪 같은 공포일 것이다.

<클레오의 세계, 원제: Àma Gloria>는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2023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개막작이다. 데뷔작 <파티 걸>이후 9년 만이다. <파티 걸>2014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과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앙상블상을 받았다. 감독은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소녀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와 그녀를 돌보는 유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를 주인공으로 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담았다. 간결하고 담백한 이야기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말쑥한 이미지로 진부할 수 있는 주제에 서정적인 영화적 품격을 보여 준다.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은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도 그 사실은 말하지 않겠죠. 그것은 비밀스럽고 아주 은밀하며 무언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명확한 진실인데요, 제가 겪었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했다. 이 영화는 어린 시절 그녀를 돌봐 주었던 보모 로린다 코레이아에게 헌정됐다. 클레오처럼 감독 또한 보모와 헤어지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클레오의 세계' 스틸컷, 클로에 역의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클레오의 세계' 스틸컷, 클레오 역의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어떻게든 글로리아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여섯 살 소녀는 갓 태어난 글로리아의 손자가 죽기를 바란다. 흔히 동생이 태어나면 동생에게 빼앗긴 부모의 관심을 되돌리려고 동생을 미워하고 괴롭히듯 말이다. 모든 게 갓난아이 때문인 것 같은 클레오는 우는 아이가 밉다. 아이로 인해서 모든 게 엉망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진심을 몰라주는 글로리아에게 화가 난 클레오는 절벽으로 내달린다. 위험천만한 모험이었지만, 그 후 클레오는 한층 성장한 아이가 된다.

'클레오의 세계' 스틸컷, 마리 아마추켈리, 피에르-엠마뉘엘 리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클레오의 세계' 스틸컷, 마리 아마추켈리, 피에르-엠마뉘엘 리에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데뷔작 이후 9년 만이다. 영화를 애정하며 때를 기다렸을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의 집념과 두 배우의 과하지 않은 감정의 교감, 그리고 복잡한 심연의 갈등을 회화적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며, 극에 자유로움과 천진함을 더하며 완성도를 높인 수작이다.

영화는 묘한 공감을 준다. 오랜만에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유년의 기억을 휘저으며, 잊고 살았던 그 시절 나를 보살펴 준 고마운 이들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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