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드 오크’...천년의 희망
‘나의 올드 오크’...천년의 희망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4.01.16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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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영국은 첫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다. 당시 시리아 난민은 대부분 영국 북동부 지역에 수용됐다. 그곳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 주민은 난민 이주를 결정한 당국에 몹시 화가 났고, 그 불만의 화살은 고스란히 난민에게로 돌아갔다. 켄 로치의 <나의 올드 오크>는 그때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켄 로치가 제시한 공존의 화해 방법은 단순 명료하다. 함께 모여 어울려 식사하는 것.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왼쪽)야라 역의 에블리 마리, TJ 발랜타인 역의 데이브 터너, ㈜영화사 진진 제공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왼쪽)야라 역의 에블리 마리, TJ 발랜타인 역의 데이브 터너, ㈜영화사 진진 제공

1984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는 비효율성을 이유로 국영 탄광을 폐쇄했다. 2만 명에 이르는 광산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이에 광부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2년여에 걸쳐 대규모 파업을 진행하지만, 결국 국가의 승리로 돌아갔고 많은 이들이 생계를 잃었다.

<나의 올드 오크, 원제: The Old Oak>(2023)는 지역 사회를 지탱하던 산업의 몰락 이후 사회로부터 단절된 마을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는 것이 팍팍한 현실에 예기치 않게 낯선 사람들이 마을로 이주하면서 그들에 대한 적개심은 철옹성처럼 단단하여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다. 암울하고 우울한 쇠락한 폐광촌의 삶 속으로 불쑥 들어온 난민들과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할까. 영화는 주민과 난민 사이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다.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에서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 밸런타인(데이브 터너)은 어느 날 마을로 이주하는 버스에서 사진작가가 꿈인 소녀 야라(에블라 마리)를 만난다. 마을 주민들은 야라 뿐만 아니라 난민들 모두를 반기지 않지만, TJ와 야라는 올드 오크에서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올드 오크역시 마을처럼 쇠락해 가는 공간.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켄 로치(1936년생) 감독은 <나의 올드 오크>를 통해 용기와 결단으로 힘든 시기를 맞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과장 없이 사실적으로 담았다. 아울러 수십 년 동안 한 지역 사회에 불어닥친 사건과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하여, 실제 촬영도 영국 북동부 더럼주(County Durham)에 광산 마을이었던 머튼(Murton)과 호덴(Horden), 이징턴(Easington) 등에서 진행했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더럼 대성당(Durham Cathedral, 1133년 완공)도 극에 주요한 장소로 활용된다. 건 천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대성당의 아름다움에 눈물 흘리며, 수고했던 노동자의 땀과 지혜와 협력을 상기하는 야라. 비참한 시리아의 상황에 절망하며 세계의 무관심이 야속하지만, 대성당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 노동의 숭고함에 다시금 조국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켄 로치 감독은 1960년대 BBC TV 다큐드라마 연출을 시작으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칸영화제에서 2차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의 26번째 영화인 <나의 올드 오크><, 다니엘 블레이크><미안해요, 리키>(2019)에 이어 영국 북동부를 배경으로 한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자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다.

붉은 벽돌집들이 늘어선 마을 골목 어디쯤에서 빌리 엘리어트’(2000)가 발레 슈즈를 목에 걸고 뛰어나올 것 같았다. 빌리가 없는 그 거리엔 사진기를 든 야라가 있다. 내전으로 조국의 반이 폐허가 됐지만 천년 후의 시리아를 꿈꾸며 희망의 사진을 찍는 그녀의 단단한 소망이, 빌리 엘리어트처럼 꿋꿋하게 행진하길.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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