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 사이에서’...우정의 옷을 입은 기만
‘두 세계 사이에서’...우정의 옷을 입은 기만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4.01.25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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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낄 수 있을까. 공감 초능력자가 아니고서야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두 세계 사이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마음의 문을 연다. 영화는 프랑스 노동 취약계층의 삶과 애환을 직접 보고 체험한 플로랑스 오브나의 위스트르앙 부두를 원작으로 했다. 다큐에 소설적인 재미를 가미한 논쟁적인 영화다.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왼쪽)크리스텔 역의 헬렌 랑베르, 마리안 역의 줄리엣 비노쉬, ㈜디오시네마 제공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왼쪽)크리스텔 역의 헬렌 랑베르, 마리안 역의 줄리엣 비노쉬, ㈜디오시네마 제공

<두 세계 사이에서, 원제: Ouistreham, Between Two Worlds>는 국내에 9편의 저서가 출간될 만큼 인지도가 있는 소설가 엠마뉘엘 카레르가 연출했다. 그는 1986년 소설 콧수염을 시작으로, 1995겨울 아이로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 그 이름을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TV 시리즈와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해 왔다. 20편 이상의 작품에 각본가로 참여했으며, 그의 영화 연출작으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코텔니치로 돌아가기>(2003), 본인의 소설 데뷔작을 직접 각본과 연출한 <콧수염>(2005)이 있다. <두 세계 사이에서>는 그가 16년 만에 각본가로 참여하고 감독한 영화다.

감독은 이 영화를 구상하기 전에, 플로랑스 오브나의 위스트르앙 부두(The Night Cleaner)를 읽었다. 그러나 당시는 본인이 영화로 각색하고 연출을 할 줄은 전혀 짐작도 못 했다.

원작자인 플로랑스 오브나는 이 책이 영화화되는 걸 원치 않았다. 영화로 탄생하는 데는 줄리엣 비노쉬의 숨은 공로가 컸다. 줄리엣 비노쉬는 매년 플로랑스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영화를 권유했고 결국 설득당한 플로랑스는 영화는 반드시 엠마뉘엘 카레르가 연출하기를 원했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다큐멘터리적 소재에서 시작했지만, 작가의 기록에 뭔가를 덧붙이는 대신 원작으로부터 거리감을 두고 픽션을 선택했다. 그래서 영화에는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픽션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원작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감독은 크리스텔에 집중한다. 원작에는 강한 동료애를 중심에 두고 있어서 개인적인 유대감은 상대적으로 적게 묘사하지만, 각색된 대본에는 마리안(줄리엣 비노쉬)크리스텔(헬렌 랑베르)우정에 초점을 맞췄다. 우정과 유대가 무르익은 관계에서 마리안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배신감의 충격이 크도록 갈등 요소를 극적으로 담았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영화 속 주인공 마리안은 플로랑스와 나의 중간 창조물로 태어났다. 그래서 플로랑스가 아닌 마리안으로 이름을 바꿨고, 저널리스트가 아닌 작가임을 명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마리안 역의 줄리엣 비노쉬, ㈜디오시네마 제공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마리안 역의 줄리엣 비노쉬, ㈜디오시네마 제공

위스트르앙 부두는 프랑스 항구도시인 캉에 있다. 그곳은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한 아프리카 난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으로 영화에도 난민의 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원작은 위스트르앙 부두: 우리 시대 투명인간에 대한 180일간의 르포르타주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발간됐다. 내용은 작가가 20092월부터 7월까지, 실업자로부터 시급 8유로의 청소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종군일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소하는 노동자들을 투명인간으로 표현하며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와 청소부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단지 진공청소기의 일부처럼 취급되는 청소부의 숨 막히는 노동 현장은 우리나라나 프랑스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몇 해 전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 현장이 크게 이슈화됐지만, 그들의 처우가 개선됐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없다.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모르는 일상화된 해고 속에서 숨죽이는 노동자들의 삶이 눈물 날 뿐이다.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디오시네마 제공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디오시네마 제공

원작에 나오는 두 실존 인물이 영화에 출연하여 자신의 역할을 맡았다. 바로 여객선 청소 감독인 나데주와 위스트르앙을 떠난 쥐스틴이다. 그 외 주인공 크리스텔 역을 맡은 헬렌 랑베르는 비전문 배우로 출연하여 줄리엣 비노쉬와 좋은 연기 호흡을 보여 준다.

정의로운 사회는 가능한가. 영화는 능력의 차이가 소득 분배로 이어지고 계층 간의 격차는 좀처럼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우정과 연대라는 기만으로 담았다. 위스트르앙 항구의 밤안개 같은 깊은 침묵과 긴 탄식이 한기로 다가온다. 참 아프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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