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아미코'...그래도 괜찮아!
'여기는 아미코'...그래도 괜찮아!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4.02.29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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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말했다. "괜찮아요!"라고. 아무도 자기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고, 누구도 사실을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이 없지만. 더욱이 자신을 산속 할머니 집에 두고 떠나는 아버지를 잡을 수 없지만, 소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혼자였으니깐.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오른쪽) 아미코 역의 오사와 카나, (주)슈아픽처스 제공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오른쪽) 아미코 역의 오사와 카나, (주)슈아픽처스 제공

<여기는 아미코, 영제: Amiko>(2022)는 이마무라 나쓰코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인 이마무라 나쓰코(1980년생)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2010년 데뷔작 여기는 아미코로 권위 있는 제26회 다자이 오사무상을 수상했다. 영화 <여기는 아미코> 역시 모리이 유스케(1985년생) 감독의 데뷔작이다. 감독은 20대 후반에 처음 원작 소설을 읽고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가슴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버린 느낌이었고, 혼자 있을 때마다 아미코에 대해 생각하며 점차 영화로 각색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후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아미코가 보는 세계, 책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그려낼 것인가를 무척 고심했다고 한다

그런 고심 덕분이었을까.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소설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원근감에 시각적인 아름다운 미장센을 빼어난 구도로 보여준다. 이와 대비하여 무궁한 변화무쌍한 아미코(오사와 카나) 표정의 클로즈업은 관객을 아미코 마음속으로 속수무책 빨려들게 한다. 그리고 발랄하고 산뜻한 청량감의 청각적인 이미지는 소설과는 또 다른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좀처럼 눈치챌 수 없는 발소리, 일상의 미세한 소음 등등이 사운드트랙과 어우러져 마치 서로 교신하듯 영화를 풍성하게 한다. 이는 오롯이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에 기반한다. 감독은 집요하리만큼 아미코 내면의 불안한 움직임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끈덕지게 영화적 미학을 창조하며 뿌리를 둔 원작 소설과 또 다른 결의 감동과 울림을 완성한다.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아미코 역의 오사와 카나, (주)슈아픽처스 제공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아미코 역의 오사와 카나, (주)슈아픽처스 제공

영화의 배경은 히로시마 해변 동네. 아미코는 소학교 5학년으로 아버지, 새엄마, 그리고 2살 위의 오빠랑 산다. 그리고 가슴이 두근두근할 만큼 좋아하는 동급생 노리가 있다. 그 마음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변하지 않는다. 노리 밖에 안 보이는 아미코를 오래 지켜본 유일하게 아미코와 말을 주고받는 동급생 짧은 머리 소년이 아미코 주변을 맴돈다. 예기치 못한 새엄마의 유산은 아미코 가정에 일상의 행복을 무너트리고, 결국 아미코 혼자만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할머니 집으로 이사한다.

주인공 아미코 역의 오사와 카나(2011년생)<여기는 아미코>가 영화 데뷔작이다. 330명이 넘는 오디션 지원자 중에서 발탁됐다. 감독은 첫눈에 그녀가 완벽한 아미코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한다오사와 카나는 소학교 5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자유분방하고 내밀한 변화를 겪는 아미코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아미코에 천진난만한 생각과 행동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오빠가 폭주족과 어울리며 불량소년이 된 이후로는 집에서도 늘 혼자였던 아미코.

응답하라 여기는 아미코~”. 목청껏 부르짖지만 아미코에게 응답한 사람은 오랜만에 집에 들른 오빠밖에 없었다. 베란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로 계속 잠을 못 자도, 하교하는 시간에 등교해도 누구도 그녀가 왜 밤잠을 못 자고 지각과 결석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파닥파닥, 꾸꾸, 바스락바스락...’ 자신을 끝없이 괴롭히는 소리를 떨쳐버리려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텅 빈 학교 복도를 맨발로 걸을 때 토닥토닥 들리는 발소리를 좋아하는 아미코는 그 소리에 맞춰서 상상의 노래를 부른다. 그뿐인가. 혼자 남겨진 할머니 집에서 한숨 못 자고 어두운 새벽부터 발을 바꿔가며 깨금발로 아버지가 돌아간 길을 따라 걷고 걷는다. 얼마를 걸었을까. 어둠이 사라지고 날이 환히 밝았다. 그리고 도착한 바닷가. 하루 사이에 성큼 성장한 아미코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다 괜찮을 것이다.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주)슈아픽처스 제공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주)슈아픽처스 제공

어느 날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멋진 뭉게구름의 판타지가 사는 기쁨을 일깨워 주듯, 고장 난 무전기로 간절히 부르는 아미코에 응답하듯, 마법처럼 <여기는 아미코>에 빠져들었다. 원작을 찾아 읽고 영화를 다시 보니, 감독의 빼어난 연출이 더욱 도드라졌다. 오사와 카나의 연기력도 놀랍지만, 아미코에 내밀한 마음의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한 아오바 이치코의 사운드트랙은 앙증맞은 제비꽃처럼 사랑스럽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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