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드림’... 가혹한 애틋한 기억들
‘로봇 드림’... 가혹한 애틋한 기억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4.03.21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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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지 않았다. 고장 난 열차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몸으로 폐쇄된 해수욕장 텅 빈 해변에 쓸쓸히 누워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는 로봇. 그를 기다리며 가을이 가고 눈 내리는 겨울이 가고 어김없이 파릇한 봄이 왔건만, 어쩐 일인지 그는 오지 않았다. 오매불망 시간이 갔다. <로봇 드림>은 개와 반려 로봇을 의인화하여 오고 가는 사계절의 무늬 속에 파닥이는 삶의 한철을 사랑의 온도로 총총히 그려낸 애틋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스페인과 프랑스 합작 영화인 <로봇 드림, Robot Dreams>(2023)은 사라 바론에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다. 사라 바론은 미국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로 동물 캐릭터를 즐겨 쓰는 만화가. 그녀는 2007년에 개와’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로봇 드림을 출간했다.

스페인 출신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1963)로봇 드림을 읽자마자 단번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정을 생각하게 했고, 이 이야기를 통하여 인연에 대한 상실감과 슬픔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이것이 <로봇 드림>을 제작하게 된 동기라고 했다.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은 사라 바론의 세계를 애니메이션으로 재구현하는 데 있어 캐릭터 디자인에 고심했다. 선으로만 이루어진 사라 바론의 순수하고 매력적인 작화를 유지하되, 극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캐릭터의 눈과 눈빛 묘사에 공을 들였다. 무엇보다 감독의 80~90년대 10년간의 뉴욕 이스트 빌리지 생활이 주인공 도그의 캐릭터와 서사를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뉴욕대학에서 수학한 감독은 80~90년대 뉴욕의 거리 풍경과 당시 유행하던 트렌드를 잊어버린 희미한 첫사랑의 사진을 촘촘히 들여다보듯 또렷이 영화에 담았다.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는 대사가 없다. 그러나 무성 영화는 아니다. 거친 숨소리, 즐거운 웃음소리와 외마다 비명, 냉장고 여닫는 소리, 창밖으로 들리는 자동차 소리, 지하철 안의 소리, 왁자지껄 유원지에 즐거운 웅성거림, 인적없는 해변의 거친 파도 소리, 등등. 생활 소음까지 모든 음향 요소들을 매우 중요한 캐릭터로 담았다. 어디 그뿐인가. 음악은 더 놀랍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 인터뷰 기사를 보니, 감독은 영화는 어떻게 보일까?’ 뿐만 아니라, ‘어떻게 들릴까?’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듣는 영화로서의 <로봇 드림>에 고심했음을 밝혔다. 덧붙여 이 영화에는 관객들이 시간여행을 하도록 도와주는 많은 음악이 쓰였는데, 그중 특히 중요한 한 곡이 있다. Earth, Wind & FireSeptember는 이 영화의 메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한 번만 등장하지 않고 계속 등장한다. 나는 개와 로봇의 노래로서, 이 곡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상실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이기에, 노래의 첫 소절인 ‘Do you remember’가 마음에 담겼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첨언하면, Earth, Wind & FireSeptember1978년 발매된 <The Best Of Earth, Wind&Fire, Vol.1>에 수록된 곡이다. 2021년 롤링스톤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중에 65위에 랭크됐으니, 발매된 지 40년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심금을 울리는 명곡 반열에 오른 곡

상실의 슬픔을 겪은 로봇의 사랑은 한층 성숙하다. 도그를 향한 사랑은 마음 한 곁에 간직한 채, 다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소중한 사랑을 잃지 않을 것이다. 새로 찾은 삶으로 행복을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아픈 기억은 그리움의 냄새로 기억될 것이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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