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죽음의 도시’ 한국 초연...상실의 슬픔조차 아름답다
오페라 ‘죽음의 도시’ 한국 초연...상실의 슬픔조차 아름답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4.05.2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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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의 국내 초연 오페라 기획공연에 일환으로 무대에 오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23일 국내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공연은 26()까지 이어진다.

오페라 '죽음의 도시' 2막, 극중극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 3막의 발레 공연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죽음의 도시' 2막, 극중극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 3막의 발레 공연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죽음의 도시>는 독일어의 3막 오페라다. 이번 공연은 조르주 로덴바흐의 소설 죽음의 브뤼주를 원작으로 코른골트가 23세 때 작곡한 작품이다. 대본 역시 코른골트와 그의 부친이 함께 완성했다. 코른골트는 파울 쇼트라는 필명으로 대본을 썼다. 1920년에 12월 독일 함부르크와 쾰른에서 동시에 초연됐다. 후기 낭만주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유려한 멜로디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연상시키는 3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로 웅장하고 화려한 음색을 선사한다.

<죽음의 도시>는 죽은 아내 마리를 그리워하는 파울의 이야기다. 파울은 아내의 머리카락을 비롯하여 아내의 물건들을 그대로 보관하며 과거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인물. 그는 죽은 아내와 닮은 마리에타를 알게 되고 집으로 초대한다. 마리에타는 유랑극단의 무용수로 파울의 집에 와서 유혹적인 춤을 춘다. 이후 파울에게 마리의 환영이 나타나 사랑과 신의를 요구한다. 한편 유랑극단의 예술가들이 도시 광장에 등장하여 공연한다. 이때 극중극으로 마이어베어의 오페라<악마 로베르> (1831)3막의 발레 장면을 마리에타와 동료들이 무대에서 익살스럽게 연기한 데, 향락적인 분위기의 그 모습을 본 파울은 마리에타를 모욕한다. 그리고 아내 외에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 않겠다던 파울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고 마리에타는 이런 그의 모습을 비웃는다. 파울은 자신을 비웃는 마리에타를 마리의 머리카락으로 목을 조른다. 그리고 얼마 후, 파울이 정신을 차리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정돈된 방을 보고, 죽은 마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죽음의 도시 브뤼주(동의어 표기 브뤼헤)를 떠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오페라 '죽음의 도시' 23일 공연 후 커튼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죽음의 도시' 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 후 커튼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코른골트는 7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오스트리아의 신동으로 불렸다.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그를 천재라고 칭찬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23살에 그의 세 번째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발표했다. <죽음의 도시>는 초연부터 대성공을 이뤘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이후 상실감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1940년대까지 2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하며 할리우드 영화음악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영화음악에 종사하는 아들을 못마땅했고, 그 역시 순수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그동안 작곡한 영화음악의 주제 선율을 바탕으로 작곡한 바이올린협주곡을 발표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죽음의 도시>에 비견할 만한 오페라는 작곡하지 못하고 195760세라는 나이로 미국 LA에서 영면했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프로덕션은 독일 지휘자 로타 쾨닉스와 스위스 연출가 줄리앙 샤바스가 이끌었다로타 쾨닉스는 오스나브뤼크 극장의 음악감독을 역임하고 빈 주립오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에서 모차르트부터 베르크까지 폭 넓은 레퍼토리를 보여주는 지휘자. 23일 공연에서도 그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3관 편성의 대 오케스트라임에도 하나의 음색으로 이어지듯 명징하고 선명한 색채로 각 파트에 앙상블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연출가 줄리앙 샤바스는 마그데부르크 오페라극장의 극장장을 역임하며 특히 현대 오페라 제작으로 오페라계에 이름을 알린 연출가다. '귀만큼이나 눈으로 작품을 음미하게 한 연출'이라는 평을 들으며 전 세계 오페라극장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연출가다. 이번 국내 초연 <죽음의 도시>에서는, 파울의 복잡하고 환각적이며 우울한 심상을 무대 연출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2층 구조의 파울에 집은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분리하며,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했고, 출연자의 동선과 음악의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도록 한치에 오차도 없이 계획된 배우의 움직임과 음악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특히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죽은 마리를 마네킹으로 연출하고, 마네킹의 연기를 무용수(김채희)가 맡아서 했는데, 죽은 마리를 이미지로 처리하는 통념을 완전히 박살 내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연출이었다.

오페라 '죽음의 도시' 포스터,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죽음의 도시' 포스터, 국립오페라단 제공

23일 국낸 첫 무대에 선 파울 역의 로베르토 사카는 1막에서의 마리에타와의 2중창인 '내게 머물러 있는 행복'도 좋았지만, 특히 3막 마지막 장면에서의 아리아는 남몰래 눈물이 흐를 만큼 오페라극장 객석을 아름다운 슬픔의 바다로 적시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또한 마리/마리에타 역의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도 더할 나위 없는 기량으로 마리/ 마리에타의 아리아를 소화했고, 무용수답게 역동적이고 분주한 움직임과 함께 고난도의 아리아까지 아름다운 음색으로 잘 표현했다. 아울러 파울의 친구인 프랑크/프리츠 역에 바리톤 양준모 역시 노련하고 중후한 음색으로 그 유명한 2막의 아리아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오페라 실연으로 보는 기쁨을 관객에게 선물했다.

24, 26일에는 파울 역에 테너 이정환, 마리/마리에타역에 소프라노 오미선, 프랑크/프리츠 역에 바리톤 최인식이 무대에 오르며 기량을 선보인다. 25일에는 23일에 출연했던, 로베르토 사카, 레이첼 니콜스, 양준모 등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CBS소년소녀합창단 등이 함께 한다.

상실의 슬픔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킨 <죽음의 도시>23세의 청년이 작곡했다니, 그는 정말 음악 천재다. 객석에서 음악을 들으며, 만약 히틀러 나치 정권(1933~1945)이 없었다면,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는 현대의 모차르트로, 오페라 역사를 다시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영화음악을 "대사가 없는 오페라"라며 영화음악에서조차 오페라를 구현했던 에리히 볼프강. 시대는 흘렀어도 <죽음의 도시>는 여전히 처연하고 아름답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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