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스케치... 강원도 평창이라 가능했다
제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스케치... 강원도 평창이라 가능했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0.06.2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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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기적이 날마다 일어났다
사진 = 평창평화영화제 문성근 이사장, 영화제 제공
사진 = 평창평화영화제 문성근 이사장, 영화제 제공

[한국뉴스투데이] 예측을 불허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과  남과 북이 손을 맞잡고 철석같이 맺었던 평화의 언약이 무참히 깨져버린 경색된 현 시국은 국가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 상황임은 분명하다. 관혼상제조차 사람이 모이는 것을 제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을 기피하는 문화에 점점 길들여지는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언제 마스크를 훌훌 벗고 얼굴을 마주 보며 왁자지껄 웅성거릴 수 있을까. 자유롭게 사람과 사람이 무리 지어 어울릴 수 있는 일상의 자유는 이제 다시 맛볼 수 없는 것일까. 일상의 평화와 자유가 간절하다. 국민 모두가 긴장감과 피로감으로 지친 현실 상황에 과연 오프라인 영화제를 개최한다니. 정말? 가능할까.

사진= 개막식 축하공연 전경, 영화제 제공
사진= 개막식 축하공연 전경, 영화제 제공

우려와 기대 속에 제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식이 오프라인 행사로 18일 개최됐다. 개막식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올림픽 메달플라자 광장에서 진행됐다. 무탈하게 300여 명이 한 공간에 앉아서 개막 공연과 개막작을 관람할 수 있을까.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우려는 지나친 기우였다. 개막 공연을 축하하듯 안개비가 살포시 내리는 대관령 밤 하늘을 바라보며 어느새 관객의 마음은 가야금 선율에 촉촉이 젖어 들었다. 축하 공연은 정재일 음악감독의 피아노와 박순아 가야금 연주로 진행됐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이번 영화제 위하여 북한 교향곡 <압록강>과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가곡 <내 고향을 이별하고>를 테마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란 창작곡을 초연했다거리두기를 반영하여 개막식 좌석이 배치됐고 정부와 지자체 및 질병관리본부 방역 매뉴얼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가운데, 스태프 및 자원활동가, 관객, 게스트, 관계자 등 영화제 참석 전 인원을 대상으로 발열 체크 및 손 소독, 대인소독기 통과, 문진표 작성 등의 방역 절차가 이루어졌으며 QR코드 전자출입 명부 시스템 클린강원 패스포트를 통해 관객들의 출입 내역 및 발열 여부, 인적 사항을 기록했고 보관했다. 그물망 같은 방역 체계로 관객들이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지연됐지만, 차례를 기다리는 순간조차 기대와 흥분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너와 나'가 '우리'가 되어 함께 아우르며 만들어 가는 축제의 밤이었다. 축제를 위하여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준비하고 검점한 주최 측의 기획과 숨은 노고가 뭉클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이다지도 엄중한 시국에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추진력으로 오프라인 영화제를 감행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고민도 많았고 걱정도 많았다. 일상이 깨지는 것을 보면서 '다시, 평화'를 생각하고 싶었다. 남북 관계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들어가는 현 상황을 보면서 평화가 더욱더 간절하고 절실해졌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고 영화제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정 강원이고 평창이라는 좋은 자연이 있기 때문에 시도가 가능했다. 그러나 매우 조심스럽다. 영화제가 관객들에게 좋은 힐링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문성근 이사장은 개막작 기자 간담회에서 영화제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휴전 중인 분단국가에서 '평화' 만큼 절박하고 절실한 소망이 있을까. '다시 평화'를 염원하는 문성근 이사장의 절절한 심정이 영화제 스텝들과 영화제를 사랑하는 관객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사진= 남부군 리마스터링 버전 상영 후 정지영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영화제 제공
사진= 남부군 리마스터링 버전 상영 후 정지영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영화제 제공

접촉을 배제한 축제가 가능할까
현재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올림픽메달플라자를 중심으로 마을 공간들을 활용한 대안 상영관에서는 초청작들이 상영 중이다. 최대한 대민 접촉을 배제하고 진행되는 영화제는 23일 폐막일까지 계속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공연을 공유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소박한 기적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날마다 기적을 맛봤다. 평창의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상영관을 찾아다니며 걷는 즐거움은 완전히 덤이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동네를 한 바퀴 돌면 거리가, 사람이, 정이 들었다. 물론 셔틀버스 배차도 잘 짜여 있다. 올림픽 메달플라자와 알펜시아와 용평리조트,  진부 KTX 역까지 셔틀이 운행된다.

19일 '포테이토 클럽하우스'에서 영화를 봤다. ' 포테이토 클럽하우스'는 ​이제는 쓸모가 없는 버려진 감자 창고를 개조한 대안공간이다. 감자 창고에서 영화를 보다니! 도시 멀티플렉스에 길들여진 영화 보기의 관습이 무참히 무너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화제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모색과 시도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영화제의 아우라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무엇보다 평창 주민들을 함께 아우르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었다. 멀티플렉스 중심이 아닌 마을 문화 공간을 상영관으로 활용하면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방역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라는 방은진 집행위원장의 말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상영관을 둘러보면 금방 눈치채게 된다. 

 평창영화제는 2020년 국내 최초로 오프라인으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다. 강원도의 추진력과 힘이 놀랍다. 평창영화제의 성공 여부에 따라 국내 국제영화제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어려운 결단과 용기로 관객들에게 일상의 '평화'를 선물한 영화제 주최 측의 무모한 모험과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
23일까지 올림픽 메달플라자, 알펜시아 시네마, 알펜시아 콘서트홀, 알펜시아 뮤직텐트, 포테이토 클럽하우스, 어울마당, 월정사, 바위공원, 용평리조트 등 10개의 상영관에서 34개국 96편의 영화와 다양한 공연이 이어진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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