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안전보건조치 위반 건수 소폭 감소 등 긍정 신호
처벌 규정 등으로 경영계 중심 반발 이어지자 손질 예고한 정부
산재사망 감축 취지 뒷전에 노동계 반발...50인 미만 유보 문제도
[한국뉴스투데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흐른 가운데 사망사고 건수와 안전보건조치 위반 건수 등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처벌 규정 등으로 인해 경영계의 반발이 이어지자 정부가 형량을 줄이는 등 개정하겠다고 밝혀 산재 사망을 감축하겠다는 제정 취지를 정부 스스로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행 후 6개월...산재 사망 억제 효과 주목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 6개월이 지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이나 공공시설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공무원·법인을 처벌할 수 있게 정한 법률이다. 이에 지난 반년간 처벌 가능성을 부담으로 느끼는 경영계를 중심으로 개정 요구가 이어지는 등 중대재해처벌법은 갈등의 중심이 돼왔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로도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을 두고 사고 억제 효과가 미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법 시행 후 반년밖에 흐르지 않아 효과를 평가하기엔 이른 시점이라는 반박도 있었으나, 산재 사망 감축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둔 법률인 만큼 억제 효과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 19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6개월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는 50인·50억 이상 사업장에서의 사망사고가 8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109건 발생한 데 비해 22건 줄었다고 밝혔다.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도 111명에서 96명으로 15명 줄어들었다. 전체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망 사건은 31건, 사망자 수는 20명 줄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50인 이상 제조업에서의 사망사고는 지난해보다 4명 늘어났다. 이는 1000명 이상 제조업에서의 사망자가 여러 차례 발생한 탓인데, 올해 상반기 동안 ▲사망자 3명이 발생한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 ▲사망자 4명이 발생한 여수 산단 폭발 사고 ▲사망자 2명이 발생한 울산 석유화학업체 화재 사고 등의 여파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는 27일 상반기 산업안전보건 감독 결과에서 “2월 이후 점검·감독 물량이 증가하는 가운데 사업장의 법 위반율은 3월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어 현장의 안전보건관리 수준이 다소나마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사업주의 직접적 안전보건조치 관련 법 위반율은 1월 이후 지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관련 법 위반율도 3월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령 지난 1월 35.7%에 달했던 안전보건조치 위반율은 6월 기준 20.1%로 줄었으며,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위반율은 지난 3월 정점 당시 31.3%였으나 6월 기준 23.6%로 지속 감소했다. 감독·점검 물량이 2월 989개소에서 6월 2067개소로 2배가량 늘어난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유의미한 감소치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초기 안착의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7월에 접어들며 사망사고가 급증하고 있어 고용노동부는 50인·50억 이상 사업장에 대한 산재 사망 사고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이달 들어 50인·50억 이상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지난 21일 기준 23건으로, 지난해 7월 1일부터 21일까지 사망사고가 8건이었던 데 비해 15건 늘었다. 지난 21일까지 올해 발생한 50인·50억 이상 사업장에서의 총 사망사고는 129건으로 지난해 비해 4건가량 소폭 줄었으나 이달 들어 급증세가 확인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급증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건설업에서 공사 기한 단축 압박이 이뤄졌던 점 ▲휴가철을 앞둔 제조업의 생산 일정 가속화로, 위험성이 높은 비정형 작업 등이 단기적으로 늘어난 점 ▲예년보다 매우 빨리 찾아온 폭염으로 노동자들이 주의력을 잃기 쉬운 환경이 지속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경영계 요구따라 개정 예고...뒷전된 제정 취지
앞서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발간한 해설서에서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 보호는 경영책임자의 기본적 의무다. 산업재해는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예방할 수 없다. 사람은 실수하고 기계는 고장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이 종사자의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는 태안화력발전소 압사 사고,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와 같은 중대산업재해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세월호 사건과 같은 중대시민재해를 언급하며 “이러한 재해가 계속되는 근본적 이유는 기업에 안전·보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필요성과 취지를 당시 정부 스스로 설명한 대목이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에 이를 위한 형벌 규정이 포함되자 경영계를 중심으로 처벌을 완화해야 한다는 반발이 쏟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중대산업재해로 사망자를 낼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부상자·질병자를 내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해당 법인·기관의 책임이 인정될 경우 법인·기관에도 사망자 발생 시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상자나 질병자 발생 시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지난 15일 기준 현재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88건의 사건 중 법 위반 혐의로 경영책임자 등이 입건된 것은 46건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은 14건에 불과하다. 산재 사망 사고의 대부분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된 수치인 것은 물론 현재까지 형을 확정받은 사례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경영계는 격렬한 반대를 이어왔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임대·발주 형태 계약인 경우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제외하고 ▲재발방지책 의무를 중대재해로 판명된 사고에만 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하청에 대한 원청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확인’ 의무로 수정하고 ▲안전보건 관리 비용과 안전보건조치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을 정부에 전달한 바 있다.
일각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자를 압박하는 이른바 경제 형벌이라는 호소가 나오자 정부는 지난 13일 ‘경제 형벌 규정 개선 태스크포스(이하 TF)’를 출범하며 이에 화답했다.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등 12개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TF는 이날 “경제 법령상 과도한 형벌조항들이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우리나라의 상대적 투자 매력도를 저하시키는 등 부작용을 초래해왔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손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앞서 지난달 정부의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예고됐던 것으로, 이날 TF는 “개선 필요성 규정이 있는 규정은 비범죄화 또는 형량 합리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형량 합리화의 경우 “형벌 존치가 불가피하더라도 과도한 형량을 완화하고 선 행정제재 부과 후 미이행 시 형벌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혀 경영계의 처벌 완화 요구에 응답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지난해 정부가 밝혔던 바와 같이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도록 경영책임자를 자극해 반복되는 죽음을 막겠다는 제정 취지는 뒷전이 된 모양새다.
한편으로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하루 평균 2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하고 있는 현실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낡은 설비에 대한 관리·감독을 국가주도식으로 바꾸는 ‘노후설비 안전관리특별법’ 등을 추가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천NCC의 폭발 사고 등 전체 사망자의 증가를 이끈 제조업의 대형 사고가 노후한 설비 상태를 인지하고도 방치한 데서 비롯됐다는 점이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산재 사망사고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 적용이 2024년으로 미뤄진 점도 문제로 꼽힌다. 올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발생한 전체 사망사고 312건 가운데 법 적용이 유예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약 63%에 달해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