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인권] ⑤가해와 피해, 기후와 인권의 아이러니
[기후와 인권] ⑤가해와 피해, 기후와 인권의 아이러니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4.04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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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배출 적은 키리바시, 기후위기로 수몰 위기
파키스탄, 지구 온난화로 연평균 700%이상 홍수 재앙
가해국과 피해국이 극명한 기후위기, 가해국 책임 막중

기후변화를 환경문제의 범주에만 놓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기후와 인권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이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인권과 기후를 한 맥락으로 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특정 영역의 문제가 아닌 범지구적인 영향을 주는 포괄적 조건과 같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각종 악영향은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인권을 침해하는 큰 요소가 된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후와 인권의 상관관계를 파헤친다. <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유엔은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권 위협을 인정했다. (사진/픽사베이)

기후위기 난민 인정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인 키리바시는 기후위기로 인해 나라 전체가 수몰 위기에 처해있다. 적도와 날짜 변경선이 만나는 태평양 중앙에 위치한 키라바시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나운 파도와 상승하는 해수면으로 키리바시는 물에 잠기고 있다.

지난 2013년 키리바시의 사우스타라와섬에 살고 있던 이아오네 테이티 오타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기후난민을 신청했다. 테이티오타에 따르면 1947년 1,641명에 불과했던 사우스타라와섬의 인구는 2010년 5만 명으로 60년 사이 수십 배 이상 급증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근 섬들이 물에 잠기면서 그곳에서 살 수 없던 사람들이 비교적 해발이 높은 사우스타라와섬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사우스타라와섬의 인구수용 범위는 한계를 넘어섰고, 이는 주민 갈등, 범죄율 증가를 비롯해 물 부족, 식량 부족을 낳았다.

테이오타이는 뉴질랜드 대법원이 첫 기후난민 지휘를 거부하자 유엔에 재판단을 요청한 것이었다. 결국 2020년 1월 20일, 테이티오타의 기후난민 신청에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기후위기로 임박한 위험에 직면해 피난을 온 사람들을 강제로 본국에 돌려보낼 경우 인권 침해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결국 유엔은 ‘임박한 위험에 있지는 않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지만 “나라 전체가 물에 잠기는 극단적 상황에서는 인간다운 존엄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권 위협이 인정된 중요한 사례로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적은 나라가 기후 난민으로 인정받은 첫 국가가 된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기후위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하다.  (사진/픽사베이)

자연재해 아닌 인재

7~9월이 우기인 파키스탄역시 기후위기를 맞는 대표적인 국가다. 지구 온난화가 비구름을 몰고 오는 몬순을 강하고 불규칙하게 만들어 500~700% 많은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셰리 레흐만 기후변화부 장관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오염을 일으킨 부유한 국가들이 홍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에 배상해야 한다”며 “무자비한 기후재앙에 대해 전 세계 탄소배출량 목표와 배상금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슬픈 사실이지만 파키스탄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 1%도 기여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자연 재해가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 즉 인재로 봐야한다. 부문별하게 과열된 발전과 소비사회가 빚은 이 ‘인재’는 성별, 연령, 지역, 직업, 장애유무, 계급 등 사회 경제적인 불평등과 맞물려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2020년에 태어난 아이는 1960년에 태어난 기성세대보다 2배의 산불, 3배의 흉작과 가뭄 및 홍수, 7배의 폭염을 겪어야 한다. 세대 간 정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미 닥쳐온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은 다음 세대, 아니 이미 태어난 세대에 대한 비윤리적인 태도라는 것이 환경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기후위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하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다. 화석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동식물과 같은 자연환경이 피해자가 됐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피해국 키리바시가 있다면 가해국도 있다. 세계 경제 시장을 주도하는 선진국과 글로벌 제조기업이 기후위기의 주범이다. 키리바시처럼 개발로 인한 혜택은 누려보지도 못한 채 의무만 떠안게 된 개발도상국과 주거취약계층이 피해자가 되는 논리다.

기후위기에 노출된 정도가 지역마다 비대칭적이고, 하필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지역들은 온실가스 책임이 상대적으로 가볍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그럴듯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기후위기는 가해자에겐 득이 되고 피해자에겐 독이 된다. 기후위기의 주된 원인 제공자인 선진국과 여러 기업들은 기후위기를 이용해 또 다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얻는다. 하지만 개발도상국과 주거취약계층은 직업을 잃고, 집을 잃고, 삶을 잃고 분쟁을 얻는다. 해수면이 상승한 키리바시 국민들이 실향민으로서의 삶을 준비해야 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사진/픽사베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파리기후변화협정에 탈퇴를 선언했다.(사진/픽사베이)

파리협정 탈퇴한 트럼프, 사과한 바이든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미국이 파리 기후협정을 탈퇴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 후 이를 사과하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 전세계가 가슴을 쓸어내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17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파리기후변화협정이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탈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이 미국에게 가장 부당한 조건이며, 미국 근로자들이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고, 임금이 삭감되며, 산업생산의 감소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전 세계는 비난을 이어갔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연간 68억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파리기후변화협정으로부터 미국이 탈퇴하면서, 미국의 경제에는 큰 타격이 없었으나 온실가스 감축과 같은 국제 문제 해결에 큰 차질이 생겼다. 당시 고어 전 부통령마저 “무모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동”이라면서 기후변화를 적절한 시기에 대처할 수 있는 인류의 역량을 저해하는 행위라 비판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 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연설을 통해 트럼프의 발언을 사과했다. 총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라들은 개도국들이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부합하는 번영의 길을 구축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 지원 내용 등을 언급하며 이행 의지를 강조했다. 또한 유럽연합(EU)과 독일과 함께 이집트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 5억달러 규모의 지원 방침을 밝혔다. 이어 “2005년에 견줘 2030년까지 미국 메탄 배출량을 87% 감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픽사베이)
탄소 자본주의 등 사회적 고통 유발자를 인권 가해자로 지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픽사베이)

“가해자 처벌과 책임 물어야”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강하게 밝히는 연설 중에는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기후위기 대응을 두고 “마치 지옥행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한 데에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사무총장이 경고한 ‘기후 지옥’을 피하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환경 단체들은 보통의 인권침해 사건에서 가해자에 분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탄소 배출이 생명권·생계권·건강권·주거권 등 개인의 실질적인 권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과 관련해 책임이 많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다.

무엇보다 탄소 배출 총량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이행에 대한 공정한 책임 부과, 시급하게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자원을 확보하는 한편, 가해와 피해를 중심으로 인권문제를 보던 통상적 시각을 넓혀 구조적 인과관계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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