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인권] ④기후 위기의 최약층, 장애인
[기후와 인권] ④기후 위기의 최약층, 장애인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4.02 2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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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인한 침수, 대피 못한 발달장애인 가족 참변
“약자로 사는 것도 힘들지만, 재난마다 가장 먼저 희생”
산불 재난 뉴스 속보, 수어통역이나 화면 해설 없어

기후변화를 환경문제의 범주에만 놓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기후와 인권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이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인권과 기후를 한 맥락으로 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는 특정 영역의 문제가 아닌 범지구적인 영향을 주는 포괄적 조건과 같다. 기후 위기가 초래하는 각종 악영향은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인권을 침해하는 큰 요소가 된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후와 인권의 상관관계를 파헤친다. <편집자주>

 재난 위험에 내몰려 목숨을 잃는 장애인들의 사례가 늘어난다. (사진/픽사베이)

“정부, 약자 정책 발표 시급”

지난해 8월, 서울시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서 살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건물 침수로 고립돼 사망한 사고는 우리 사회에 무거운 주제를 던졌다. 폭우는 신림동 반지하에 살고 있던 40대 발달장애인 여성 A 씨와 동생 B 씨, B 씨의 10대 딸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당시 A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2015년 6월부터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등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에게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긴 했으나, 사실상 그에 대한 돌봄은 가족이 도맡은 것으로 밝혀졌다. 비슷한 시기, 방시설 부재로 혼자 거주 중인 시각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이어지는 장애인의 참변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연 재해와 재난에서 장애인의 불평등에 관한 의문을 던지기 충분했다. 지난해 8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177개가 모인 폭우참사로 희생된 주거취약계층 발달장애인 빈곤층 노동자 추모공동행동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폭우 참사로 희생된 주거취약계층의 추모주간을 선포했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조건에 놓인 이들이 기후재난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면서 이번 참사를 ‘사회적 참사’임을 분명히 하고,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장연 권달주 상임공동대표는 “대한민국 약자로 사는 것도 서러운데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약자들이 제일 먼저 희생된다. 약자들의 삶보다 부자 정책에 혈안된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원인”이라면서 “수해당했을 때도 집에 들어가서 비상상황을 지시하는 것이 국가의 비상상황이 맞는 거냐. 말로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짜 약자를 살피는 정책을 발표하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재난 상황은 장애인같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힘들다. (사진/픽사베이)

장애인 차별 양극하는 기후 위기

평온한 삶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의 영향은 장애인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재난 상황은 장애인같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힘들다. 기후 위기는 빈곤과 차별에 더 강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기후 위기로 인한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환경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재난 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무척 높다. 뿐만아니라 일단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피해 정도가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청도대남병원에 장기입원해있던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2018년 보험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화재 사고 발생 시 장애인 사망자의 비율은 57.4%로 전체 비장애인 사망자의 비율인 12.1%보다 4배나 높다. 장애인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 상황에 대한 인지 능력이 낮고 판단이나 대처가 취약하다.

하지만 재난 및 긴급상황 대처 수준은 전체인구 대비 낮은 실정이다.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 따르면 행동 요령, 신고 전화, 소화기 사용법 등의 재난 및 긴급상황 대처 방법은 전체인구 80.%가 알고 있지만, 장애인구는 64.6%만 알고 있다. 이에 따라 불의의 익사 및 익수(전체 1.4%, 장애 3.2%), 연기·불 및 불꽃에 노출 등 화재(전체 0.6%, 장애 1.5%) 등 재난 사고에서의 장애인구 조사망률이 전체인구 조사망률보다 2배 이상 높다.

각종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매뉴얼 대부분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지상파 방송 3사의 재난 뉴스 속보 어디에도 수어통역, 화면 해설을 제공하는 곳이 없었다. 재난이 발생한 그 사실조차도 장애인은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진/픽사베이)
국가는 어떤 유형의 재난이든 장애인에게 “사고 발생 시 안전벨을 누르고 도움을 줄 사람을 기다릴 것”을 권고한다. (사진/픽사베이)

장애인은 누군가의 호의가 있어야 살 수 있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재난 상황마다 가족, 지역주민, 봉사단체, 장애인권단체 등 누군가 돌봄을 부담하거나 구조해주거나 선의를 베풀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다. 지난 2022년 3월 울진 산불 때 장애인은 국가가 아닌 이웃, 이장, 장애인권단체 등 마을 내 관계망을 통해 재난을 인지할 수 있었고, 코로나19 때는 활동지원사가 매칭되지 않아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방역복을 입고 지원에 나서야 했다. 우리는 장애인들은 운 좋게 누군가가 지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2014년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재난대응과는 ‘장애인 재난위기관리 매뉴얼(지체장애인용)’을 펴냈다. 이에 따르면 국가는 어떤 유형의 재난이든 장애인에게 “사고 발생 시 안전벨을 누르고 도움을 줄 사람을 기다릴 것”을 권고한다. 정부는 재난에 장애인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에서 장애인이 안전하게 살아남지는 못하고 있다.

이어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장애계의 건의로 정부는 2017년 장애인안전종합대책(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소방청, 국토교통부, 경찰청,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 9개 부처 참여)에 ①장애인 재난․안전 지원 정책기반 구축, ②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경보․피난․안전 설비 기준 강화, ③장애인 재난․안전 교육 및 대응 매뉴얼 개발․보급을 계획 등을 담아 발표하고, 안전취약계층의 안전서비스 확대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2020년에는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2020~2024)를 발표하고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와 지원 내용에 법제도 정비, 화재·가스 감지센서와 응급호출장비 설치 확대, 맞춤형 안전교육 강화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역시 포항 지진사태와 속초‧고성 산불 사태를 거치면서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재난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했다.

한국도 일본과 미국처럼 지역 사회별로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의 재난대피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사진/픽사베이)

일본과 미국, 재난 이후 법률개정

지난해 반지하 참사 이후 또 다시 보건복지부는 침수 우려가 있는 가정의 장애인이 미리 대피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에 조치를 당부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뾰족한 대책은 아직도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에서 장애인 희생자 비율이 비장애인의 두 배에 달하자 2013년 재해대책기본법 일부개정을 실시했다. 이후부터 일본에선 재난 발생 시 피난에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명단 작성이 의무화됐다.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당시 건물 내부에 있던 장애인들이 피난과 구조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자 재난을 대비해 엘리베이터 전원 장치를 건물 밖에 설치하도록 개정했다. 또 시각장애인을 위해 계단과 난간에 형광 테이프를 붙이거나 형광 도료를 칠하고, 계단 입구 쌍방향 통신 시스템 설치해 재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일본과 미국처럼 지역 사회별로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의 재난대피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수립된 대피 계획이 재난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계획이 작동할 수 있도록 주민센터와 재난전문기관인 소방서를 연계해 주기적인 전화 확인이나 방문을 통해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론이다. 사회 체제 차원의 대비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 속에 장애인을 그냥 방치해 두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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