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참혹한 시대, 참혹한 인생
'스텔라'...참혹한 시대, 참혹한 인생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4.05.30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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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10년을 복역한 스텔라 골드슐락은 다시 서베를린 2차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망가진 삶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그녀는 1994년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스텔라' 스틸컷, 스텔라 역의 폴라 비어, (주)뮤제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텔라' 스틸컷, 스텔라 역의 폴라 비어, (주)뮤제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텔라>는 실존 인물인 스텔라 골드슐락(1922~1994)을 모델로 한 영화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로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약 6백만 유대인이 학살됐다. 스텔라 골드슐락은 그 참혹한 시대의 중심에 있던 유대인. 1942년 베를린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절멸 수용소로 보내기 시작하자 스텔라는 아리아인 같은 금발 머리와 푸른 눈의 외모를 십분 활용하여, 신분증을 위조한다. 나아가 위조 신분증을 유대인에게 밀매하는 브로커가 된다. 그러나 지인의 밀고로 체포되고, 자신과 부모의 안위를 위하여 결국 동족을 밀고하는 독일 경찰의 앞잡이로 생명을 유지한다. 19437월부터 1945년 패전 때까지 2년 남짓 동안 그녀가 밀고한 유대인은 수백 명에 이르고, 그중엔 수용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은 유대인도 상당수다.

1945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10년의 중노동 형의 처벌을 받고 복역 후 고향으로 돌아와 또 한 번 재판을 받지만, 동일한 범죄에 두 번 처벌할 수 없다는 법 규정에 따라 자유의 몸으로 그림자처럼 모습을 숨기고 산다. 그러나 진실은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학교 친구였던 Peter H. Wyden1992Stella제목으로 책을 출간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고, 더 이상 숨어 살 수 없게 되자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스텔라' 스틸컷, 스텔라 역의 폴라 비어, (주)뮤제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텔라' 스틸컷, 스텔라 역의 폴라 비어, (주)뮤제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텔라>를 연출한 킬리안 리드호프 감독은 20년 전, ‘금발의 유령이란 강렬한 제목의 신문 기사를 통해 스텔라 골드슐락을 알게 됐다고 한다. 감독은 생존과 타락의 딜레마를 넘나드는 이 이야기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윤리적 질문을 던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스텔라는 범죄의 피해자이자 동족의 가해자다. 동시에 생존을 넘어 성공을 갈망했지만 1940년대 베를린이라는 잘못된 시대에 갇힌 현대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스텔라>에는 나치즘을 다룬 많은 영화 중 하나로 치부될 익숙함, 변명, 역사적 거리감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은 감정적인 동시에 지적으로 영화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물리적, 정신적으로 스텔라와 같은 상태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고 고뇌하게 될 것이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스텔라' 스틸컷, (왼쪽)스텔라 역의 폴라 비어, 롤프 역의 야니스 니에브외너, (주)뮤제언터테인먼트 제공
'스텔라' 스틸컷, (왼쪽)스텔라 역의 폴라 비어, 롤프 역의 야니스 니에브외너, (주)뮤제언터테인먼트 제공

감독은 재즈 가수로 브로드웨이 진출을 앞둔 재기발랄한 20대 청춘이 어떻게 시대의 광기에 휘말리며 무너지는지의 과정을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 시선으로 담담하게 담았다. 이를 위하여 스텔라 골드슐락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세세히 검토했고, 유대인 전문가 및 커뮤니티와 긴밀하게 협조하며 작업했음을 강조했다. 영화는 역사가 기억하는 영웅적 인물이 아닌, 서서히 파멸하는 인간의 초상을 긴장감 있게 보여 준다. 마치 1940년대 베를린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영화적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20대 초반의 여린 여자의 두려움에 흔들리고 갈피 없이 흔들리는 심연의 소용돌이를 마주하는 고통은 오롯이 관객의 몫.

소련의 침공이 한창인 어느 밤, 독일 장교를 등치고 위조 여권을 빼앗아 의기양양 거리를 활보하는 스텔라(폴라 비어)와 롤프(야니스 니에브외너)와 조니(요엘 바스만)는 폭격을 틈타 빈집에 숨어든다. 폭격은 점점 더 심해지고 폭격당하는 독일이 너무 신나서 만세!”를 부르는 세 사람. 그때 울려 퍼지는 바그너(1813~1883)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발퀴레의 기행과 히틀러를 흉내 내는 조니......그 광란의 카타르시스는 무엇이었을까.

스텔라 역의 폴라 비어는 17세의 재기발랄한 소녀부터 72세의 노인까지 한 여자의 굴곡진 일생을 촘촘히 세밀하게 연기한다. 가해자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어찌 가름할 수 있을까.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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