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판결’ 술 먹고 운전해도 음주운전으로 처벌 못해
‘이상한 판결’ 술 먹고 운전해도 음주운전으로 처벌 못해
  • 송재석
  • 승인 2014.09.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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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정치개입 했지만 선거개입 아니다.
[한국뉴스투데이 송재석 기자] 국정원 댓글과 관련해 정치개입은 유죄 선거개입은 무죄라는 기상천외한 판결이 나왔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당선 혹은 낙선시킬 목적까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판단 근거였다.

이는 술 먹고 운전을 했는데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 이어서 인터넷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또 현 정부가 수사팀까지 교체하면서 얻어낸 결과여서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야당 의원들은 살아있는 권력에 재판부까지 고개를 숙인 것이어서 슬픈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대로라면 국정원 직원들이 앞으로도 특정후보만 거론 안하면 간접적으로 얼마든지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판결이어서 더욱 심각 할 수밖에 없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의 핵심 쟁점은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이 정치·선거 개입에 해당하는지와 이런 활동이 그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여부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11일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판결 선고에서 사이버 활동이 국정원 고유 활동을 벗어난 정치개입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선거개입으로 볼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국정원 댓글은 정치관여와 관련해 재판부는 우선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은 원 전 원장의 구체적 업무 지시에 따른 것이며, 작성된 내용을 볼 때 정치관여 의도가 명백하다고 봤다.

심리전단 직원들이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이슈 및 논지를 매일 시달 받아 업무용 노트북으로 댓글과 트위터 활동을 했고, 작성한 글에서도 국정 성과는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비방할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고, 햇볕정책을 계승한 정당을 비판하는 글까지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정치관여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를 토대로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올린 글 2천125건과 찬반클릭 1천214건 전부가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트위터 활동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특정한 1천157개의 15% 수준인 175개 계정에 대해서만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했다.

이를 사용해 작성된 것으로 공소 제기된 트윗과 리트윗글 78만여건 중 11만3천621건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선거법은 무죄 이유로 재판부는 검찰이 주요 증거로 제시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과 이슈 및 논지 어디에서도 대선 개입을 지시한 내용은 없었다고 봤다.

또 대선에 임박한 시점에도 종북세력을 경계하고 대응하라는 지시만 했고, 특히 11월에는 선거에 불필요하게 연루되지 않게 각별히 유의해달라는 발언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정원의 댓글이나 트위터 활동이 대선 후보 윤곽도 드러나기 전부터 계속 이뤄져 왔고, 트위터 활동의 경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오히려 감소하기도 했던 점도 주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검찰 주장처럼 기존에 계속 이뤄져 온 정치관여 활동이 선거 시 선거운동으로 전환된 것이라면 선거운동의 '계획성'이나 '능동성'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여야 정치권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 대변인은 원 前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 죄송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가 선고된 데 대해선 이번 판결로 대선 개입 논란은 종지부를 찍어야 하고 야당도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명백한 사실에 대해 애써 눈감으려는 정치적 판결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김영근 대변인은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인터넷 댓글과 트윗글이 국정원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결국 정권의 눈치를 보는 판결을 했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며, 법원마저 박근혜 정권의 심기를 살피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비난했다.

한편 국정원 국조특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 판결은 성공한 여론조작은 처벌하지 못한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또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을 지지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야당 정치인들을 반대 비판하는 것만큼 더 확실한 선거 운동이 어디 있냐며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은 모순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선거개입은 아니었다는 모순된 판결을 했다고 비난했다.

또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공동대표도 도둑질한 것은 맞지만 절도범으로 처벌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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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석 news@korea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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