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투데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재난은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촌 곳곳의 일상을 극한으로 내몰았다. 2024년 기후는 ‘최초’, ‘역대급’, ‘경신’이라는 키워드를 떼어 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사시사철이 온난한 기후를 자랑하던 우리나라 역시 기후 위기에 있어서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역사상 최고 기온, 온열 질환으로 인한 인명 피해, 산불 공포 등 올 한 해 나라 안팎의 기후 이슈를 정리해본다. <편집자 주>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디언·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는 9일(현지시간) 올해 지구 평균 기온이 처음으로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섭씨 1.5도 이상 더 높아졌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기상기구(WMO)도 향후 5년(2024~2028년)간 지구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를 넘을 가능성을 47%로 예상했다.
1.5도 선 붕괴
세계 각국은 지난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이 기준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파리협정은 전 세계 196개국이 서명한 기후 협약으로, 기후 재난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지구 평균 기온은 1.5도 이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 전문 기구들의 관찰 결과, 파리협정의 1.5도 선은 이미 무너졌다.
C3S에 따르면 지난 17개월 가운데 16개월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전보다 섭씨 1.5도 이상 높았다. 특히 지난해 중반부터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온난화가 관찰되고 있어 과학자들이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올해 1~11월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62도 높았다. 이는 이전까지 가장 더운 해였던 2023년의 1.48도를 넘어선 것이다. 또 세계 각국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설정한 한계선인 섭씨 1.5도가 처음으로 붕괴한 것이기도 하다.
WMO의 발표도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향후 5년(2024~2028년)간 지구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를 넘을 가능성을 47%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2023~2027년에 대해 내놨던 예측치인 32%보다 15%p 더 높다. 또 향후 5년간 적어도 한 해의 평균 기온이 이 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2017~2021년 20%, 2023~2027년 66%에서 급증해 이번에는 80%가 됐다.

온난화 더해 엘니뇨‧라니냐
기후 변화의 첫 번째 원인은 지구 온난화이다. 과학자들은 이에 더해 엘니뇨현상이 올 해 기록적 더위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엘니뇨란 동태평양인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도 상승 현상이다. 엘니뇨는 에스파냐어로 ‘아기 예수’라는 뜻인데, 보통 12월이 되면 인근 바다에서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것을 두고 어부들 사이에서 크리스마스와 연관지어 ‘12월에는 쉬어라’라는 메시지로 해석한 것이 작명의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 과학자인 야곱 비야크니스는 엘니뇨에 대해 태평양 적도 지역의 기압이 동부와 서부 지역 사이에서 일진일퇴하는 변화로 설명했다. 동·서태평양 사이 기압 차가 발생하면 무역풍을 약화시키고 대기의 변화와 해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다 표면 온도가 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반대로 라니냐는 편서풍이 강하게 불어 태평양의 더운 물이 아시아 쪽으로 밀려간다. 동풍에 실려 이동하는 표층해수의 양이 많아지게 되면서 페루 연안에는 차가운 해수의 용승이 더 강해진다. 엘니뇨현상이 발생하면 지구의 온도는 약 0.2°C 상승하는데 반해 라니냐일 때는 약 0.2°C 떨어진다.
세계 각국은 적도 태평양 상의 특정 구역 해수면 온도를 바탕으로 엘니뇨와 라니냐의 기준을 정해두고 판단을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위도로는 남위 5도부터 북위 5도 사이, 경도로는 서경 170도부터 120도 구역을 엘니뇨 3, 4구역으로 정해두었다. 이 구역에서의 3개월 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높은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되면 엘니뇨, 반대의 경우는 라니냐로 정의한다.
펄펄 끓는 지구
엘니뇨는 2~7년 주기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니뇨로 폭염이 찾아오는 것과 달리 라니냐가 발생하는 해에는 역대급 한파가 예고된다. 엘니뇨 이후에는 라니냐가 발생하는 패턴이지만, 그 주기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각각의 엘니뇨는 그 강도와 지속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부터 찾아온 엘니뇨로 인한 피해는 극심했다.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는 4월에 40도를 넘는 폭염이 시작돼 역대급 더위의 여름으로 찾아오기 전부터 몸살을 앓았다. 올 4월 필리핀은 전면 휴교령을 내렸고, 태국의 전력 수요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남아시아의 폭염은 통상 6월까지 이어진다.
더위 피해는 우리나라도 상당했다. 지난 9월 기상청이 발표한 ‘2024 여름철 기후 특성’에 따르면, 올여름(6∼8월)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전국 기상관측지점 66곳 중 제주 4곳 제외한 결과)는 20.2일로 역대 1위였다. 평년(6.5일)보다 3.1배 많은 기록이다. ‘최악의 폭염’으로 불리는 2018년과 1994년의 16.5일을 뛰어넘었다. 제주는 열대야 일수가 56일로 거의 두 달간 이어졌고, 서울도 39일로 한 달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이어졌다. 그야말로 무더운 ‘열대의 밤’이었다. 6월 중순 이후 습하고 더운 공기가 남서풍을 타고 우리나라에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높은 습도 때문에 밤사이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은 탓이 컸다. 이런 열대야는 8월 하순 늦여름까지 이어졌다.
라니냐 아직, 혹한은 글쎄
엘니뇨 이후 찾아오는 라니냐는 더운 여름에 이어 혹독한 겨울을 몰고 온다. 기상청은 최근 ‘올겨울은 라니냐도 엘니뇨도 아닌 중립상태’라고 예측하면서 종전의 전망을 뒤집었다. 지난 10월 기상청은 “시베리아 기단과 라니냐의 영향으로 올해 12월에는 평년보다 강한 추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최근 분석 결과, 라니냐는 시작되었지만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지는 것이 기상청의 예측에 변수가 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반도 주변 해수 온도가 좀처럼 내려갈 기세를 보이지 않으면서,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 혹은 평년 수준의 겨울이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졌다.
이명인 UNIST(유니스트)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폭염연구센터장)는 "늦가을까지 이어진 이상 고온 현상이 물러나지 않고 라니냐와 동시에 한반도 기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평균보다 높은 해수면 온도가 겨울까지 지속되며 한반도 주변에 고기압을 발달시키고, 이 고기압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북풍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3일간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13~15도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최고 기온은 2~7도였다.

적극적 기후행동의 때
기후 변화로 지구촌 곳곳의 자연 재해, 일상 속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해마다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적극적 행동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탄소 배출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섭씨 1.5도 목표선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배출량은 2030년 45%까지 줄여야 한다. 이에 유엔은 지난 10월 지금 수준의 기후 행동을 이어간다면 재앙적인 섭씨 3.1도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달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는 폐막일을 넘기는 진통 끝에 선진국이 2035년까지 연간 3000억달러(약 428조원)의 공공 재정을 부담하는 신규 기후 재정 조성목표(NCQG)에 합의했다. 선진국 부담액을 2009년 설정된 목표 1000억달러(약 142조원)에서 3배 늘렸지만, 기후변화 위협에 노출된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이 여전히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고 반발했다.
파리협정 방어선인 ‘1.5도씨’ 붕괴는 우리의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무게가 있다. 사먼다 버지스 C3S 부국장은 “2024년은 확실히 역대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며,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를 초과한 첫해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는 파리협정을 위반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기후 행동이 시급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