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 날씨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식료품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직간접적 경제적 비용이 상승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가 이어지면서 커피와 카카오, 설탕, 올리브유 등의 작황이 부진해지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우리나라 역시 계절 과일, 김장철 채소, 우리 식탁 위의 친숙한 식재료까지 귀하신 몸이 되는 모양새다. 달라진 식탁, 식량 위기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과일값 무서워서 장보기가 힘들어요.” 겨울철 대표 과일인 딸기와 감귤 가격이 폭등하면서 소비자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사과에서 딸기 그리고 귤까지 철마다 계절 과일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일이 금값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물가상승률은 2.3%로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농산물은 사정이 달랐다. 폭염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금(金)사과’가 등장하더니 배추, 깻잎 등 채소류 가격이 뛰고 최근에는 귤, 딸기 가격까지 고공 행진했다. 2024년 농산물 가격 상승률은 10.4%로, 2010년(13.5%) 후 14년 만에 가장 큰 오름폭이었다. 과일·채소·해산물 등 신선식품 상승률(9.8%)도 14년 만에 최고치였다. 이중 과일류는 16.9% 상승했고, 배가 71.9%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과는 30.2%, 귤은 46.2%, 감은 36.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감귤 10개 소매가격은 4460원으로 전월보다 무려 33.37% 급등했다. 배(신고)는 전년 대비 26.57% 오른 4263원으로 집계됐다. 소비자들이 마트나 재래시장에서 구입하는 배의 가격은 개당 7,000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른 가격 탓에 과일 선물 세트에서는 배를 찾아보기 어려워 졌다.
채소 값도 크게 상승했다. 배추와 무는 지난해 대비 1.5배에서 2배 가까이 올랐다. 이달 3일 집계 결과, 배추(상) 1포기는 5027원이다. 평년과 비교해 58.9%, 33.9% 높은 수준이다. 무 역시 한 개에 3206원으로 1년 전 대비 77.4%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평년과 비교해도 52.7% 올랐다.
과일 가격이 오르면서 과일을 주재료로 하는 디저트의 가격도 오르는 추세다. 딸기 가격이 오르면서 겨울시즌 딸기 음료 가격이 조정됐다. 투썸플레이스와 할리스는 시즌 메뉴인 딸기 스무디, 딸기 라뗴 등 딸기가 들어간 음료의 가격을 500원 안팎 인상했다. 생과일이 주재료인 탕후루 등 과일 디저트 업장들은 판매를 중지하기도 했다.
가격 부담이 있는 신선 딸기 대신 냉동 딸기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 냉동 딸기의 수요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인은 가공용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신성철 농경연 과일과채관측팀 전문연구원은 “카페·베이커리 등에서 딸기가 들어간 디저트류의 인기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국산 딸기 단가가 높다보니 저렴한 수입 냉동딸기를 찾는 가공업체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상기후 직격탄
올겨울 과일값 급등의 주요 원인은 이상기후다. 10월 초까지 폭염 수준의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딸기 정식(모종을 밭에 옮겨 심는 것) 시기가 늦춰지고, 초기 생육도 지연된 탓에 출하량이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11월에 내린 때 이른 폭설로 일부 농가가 피해를 본 것도 겨울철 딸기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줬다.
이상 기후에 이어 병충해도 딸기 작황에 악영향을 주었다. 딸기 가격은 통상 초기 수확기에 가장 높게 형성되는데 올해 초기 수확기에 ‘딸기 시들음병’으로 피해를 본 농가가 상당하다는 전언이다. ‘딸기 시들음병’은 토양에 서식하는 병원균에 의해 발생하며 식물 뿌리와 줄기가 감염돼 시들어가는 증상을 보인다. 작황 부진으로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의 구매가 줄어들기 때문에 농가의 수익도 보장되기 어렵다.
감귤 역시 유난히 길었던 폭염의 여파로 껍질이 벌어지고 터지는 열과 현상이 나타나는 등 작황 부진을 겪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열과 피해 및 부패과 발생 증가로 인해 이달 감귤 출하량이 지난해 대비 8.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 가격의 폭등 역시 더위 여파다. 지난해 늦더위가 9월 말까지 이어지며 이때 수확하는 과일에 열과 피해가 발생했다. 9~10월 수확하는 배는 직접적인 피해를 봤다. 특히 명절 선물세트에 많이 쓰이는 대과의 피해가 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배 출하량이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하며 가격이 올랐고, 선물용 대과는 40%가량 뛰었다”고 설명했다.
배는 주로 명절 선물과 제수용으로 사용된다. 수요가 가진 특성을 반영하여 전국적으로 재배 면적이 9000㏊로 넓지 않다. 1개월 정도 차이로 역시 가을에 수확하는 사과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생산량 자체가 적다 보니 이상 기온 등으로 작황이 나쁘면 가격 탄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선식품 가고 가공식품 뜨고
신선식품의 가격은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월 평균기온이 1℃ 상승하면 농작물가격 상승률은 최대 0.4~0.5%p,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0.07%p 높아진다. 전체 물가 변화에 비해 농작물 가격의 상승폭이 높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기상 여건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에서는 평균 기온이 과거 추세 대비 10℃ 오르면 신선식품 가격은 최대 0.42%p 상승하고, 강수량이 100㎜ 증가하면 가격은 최대 0.93%p 상승하는 등 신선식품의 가격대가 날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선식품의 가격 상승은 서민의 식탁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식품은 특성상 소비를 줄이려해도 식생활은 기본 생활을 위해 보장해야하는 부분이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비가 불가피하다. 때문에 식품 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근원물가 안정"을 강조하며 성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서민들은 오히려 생활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식선식품의 특성상 정부 대책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산물 가격이 가지고 있는 변동성이 안정화 대책만으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해석이다.
농산물 가격의 상승으로 소비자들은 식품구입을 줄이거나 가공식품을 대체재로 택하는 모양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식품소비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식품구입을 줄인 가구는 가격이 많이 상승한 일부 품목의 구입량을 줄여서 대응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년 대비 14.9%포인트 높아진 44.6%를 차지하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내년도 소비 전망에 대해선 가정 내 신선식품은 고물가 상황에서 대체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33.8%로 감소한다는 전망 5.0%보다 우세했으며 가정 내 가공식품도 증가 전망이 27.9%로 9.6%의 감소 전망보다 높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