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다양한 가족 형태, 따라잡지 못하는 정책
【신년기획】 다양한 가족 형태, 따라잡지 못하는 정책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2.01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자 기증 출산 소식에 반발...“여러 가족 형태 중 하나일 뿐”
‘정상적인 가족 형태’ 없다...이미 다양한 가족 구성 인정해야

1인 가구 비중 31.7%로 가장 많다...4인 가구 15.6%에 불과
혈연관계=가족? 민법·건강가정기본법 등 개정 목소리 이어져

대가족이 아닌 부모-자식으로 구성된 핵가족이 가족의 기본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가족 형태의 등장은 세대마다 계속돼온 현상이다. 좋은 남성 또는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아 잘 기르는 것 역시 더이상 가족의 핵심 요건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고 홀로 아이를 기르는 여성,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 동성 연인의 동거,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외연은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편집자 주>

[한국뉴스투데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자리를 잡은 가운데 정부의 가족 정책은 결혼·출산·임신·양육 등을 지원하는 데에 머물러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내 한 가정에서 맞벌이 부모를 대신한 할아버지가 온라인 수업을 듣는 손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시내 한 가정에서 맞벌이 부모를 대신한 할아버지가 온라인 수업을 듣는 손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비혼 출산, 비혈연 동거...이미 다양해진 가족 구성

지난해 3월 탤런트 사유리가 비혼 상태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아들과 함께 육아 예능 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홀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사유리는 일본에서 정자 기증을 받았다.

국내법에서 정자 기증 시술은 난임치료로 분류된다. 모자보건법은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만이 난임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법률혼·사실혼이 아닌 상태로 난임치료를 진행한다고 해서 처벌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의료기관들은 혼인한 부부만을 대상으로 보조생식술을 시행한다는 윤리지침을 두고 있다.

당시 KBS의 시청자청원 게시판에는 사유리씨의 출연을 반대하는 청원이 빗발쳤다. 동의수 4415명을 기록한 한 청원자는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역사적인 자녀 출산·양육의 방식”이라며 “이 모습이 진보라는 이름 아래, 세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명목 아래 변질되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해당 제작진은 “한부모가구의 비율이 늘어나며 기존 기혼 가구에만 지원되던 가족 정책도 다양한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유리씨의 가정 역시 이처럼 다양하게 존재하는 가족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 방송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른바 정상적인 가족 형태는 한국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이 결혼해 자식을 낳아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각종 비정상 가족들로 가득 찬 상태에 가깝다. 각종 지표는 결혼하지 않은, 한국인이 아닌, 자녀를 입양한, 자녀를 낳지 않는, 동성 커플인, 친구나 타인과 함께 사는, 혼자 사는 등 다양한 가족들이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오고 있다.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건강사회단체전국협의회 회원들이 비혼 상태로 출산한 사유리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사실을 두고 KBS가 비혼출산 등 가정해체 지지 보도를 한다며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건강사회단체전국협의회 회원들이 비혼 상태로 출산한 사유리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사실을 두고 KBS가 비혼출산 등 가정해체 지지 보도를 한다며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혈연관계로 가족 규정...발맞추지 못하는 정부

가령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비율은 31.7%로 전체 가구 가운데 가장 많았다. 2인 가구가 28%로 그 뒤를 이었고, 4인 가구의 비율은 15.6%에 그쳤다. 전체 약 2148만 가구 가운데 한부모 가구는 약 153만 가구, 외국인 가구는 약 54만 가구, 다문화 가구는 약 37만 가구였다. 

가구는 생계를 같이하는 생활단위를 말하며 법적으로 혈연·혼인·입양 관계를 의미하는 가족과는 구분되지만, 1인 가구는 타인과 가족을 이루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가족 형태의 변화를 방증한다. 다른 가구 형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현행법은 현실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등 혈연·혼인을 중심으로 한 경우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법률이 실질적인 가족 형태의 변화를 따르지 못해 개인의 삶이 제한되고 있음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장례를 치를 때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은 연고자만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정하고 있다. 

이때 연고자란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 직계비속, 부모 외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으로, 대개 혈연관계만 포함한다. 따라서 연고자가 없거나, 사실상 부부였지만 결혼한 상태가 아닌 경우 등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20년 장사업무안내’에서 연고자 대상 가운데 ‘혈연 관계에 해당하지 않는 자로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 조항을 확대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혼 관계 ▲조카나 며느리 ▲장기간 지속적으로 동거하며 생계나 주거를 같이 한 경우 ▲사망자가 생전에 공증문서나 유언장을 통해 사후 자신의 장례주관자로 지정한 경우 등을 연고자로 확대해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처럼 실질적인 가족 형태를 정책 내 반영하려는 움직임은 시작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의 예산의 대부분은 결혼·임신·출산·양육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정부가 여전히 정상적인 가족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욕망이 자리를 잡은 만큼 정부의 가족 정책 역시 이에 빠르게 발맞출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