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진단] 화려함 속 시린 외로움, 아이돌의 비극적 결말
[투데이진단] 화려함 속 시린 외로움, 아이돌의 비극적 결말
  • 박상미 기자
  • 승인 2023.04.29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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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 ‘또’ 극단적 선택  
데뷔해도 끝 아냐, 치열한 무한 경쟁 구도
외신들, ”아이돌 육성 시스템 혹독해“ 지적

[한국뉴스투데이] 식물의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피고 진다. 화사하게 피어나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꽃 중 일부는 모진 바람이나 빗방울에 상처를 입고 시들어 열매를 맺을 만큼 영글기 전에 시들기도 한다. 2023년 봄, 또 한 송이의 꽃이 졌다. 아이돌 그룹 아스트로의 멤버 문빈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 강남에서는 닷새 사이 세 명의 10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청소년뿐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중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연령은 10대와 20대 그리고 노년층이다.<편집자 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아이돌 그룹 아스트로의 문빈(25)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를 시작으로 남미까지 해외투어를 계획하고 있던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팬들은 물론 연예계도 패닉에 빠졌다. 문빈의 사망 소식에 아이돌의 정신 건강관리 문제와 더불어 K팝 문화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피지 못한 꽃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내가 감당해야죠“

고(故) 문빈은 지난 19일 저녁 8시 10분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으며, 지난 22일에는 발인식이 엄수됐다. 경찰조사 결과, 특별한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아스트로의 소속사 판타지오 측은 팬들을 위한 추모공간을 사옥에 마련하고, 오는 30일까지 팬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판타지오는 24일 공식 팬카페를 통해 사옥의 추모공간 마련 소식을 전하면서 ”판타지오 사옥 앞 모든 추모 공간에 두고 가신 편지, 선물 등은 모두 소중하게 보관할 예정이며, 훼손없이 온전히 보관할 수 있도록 편지, 쪽지 등의 지류는 운영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수거하여 보관 예정“이라고 알렸다.

문빈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생전 그가 팬들과 소통하면서 했던 말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심리적 부담에 대한 염려와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빈은 앞서 8일 팬들과 소통하는 라이브 방송에서 ”고백할 게 있는데 사실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문빈은 아스트로 유닛 문빈&산하를 결성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8개 도시와 남미 3개국 투어를 계획하고 진행중이었다. 지난달 국내 팬 콘서트로 이 월드투어를 시작했고, 8일 라이브 방송은 방콕 콘서트를 마친 후 진행한 것이다. 

이날 문빈은 ”팬 콘서트 때부터 티가 났던 것 같다. 팬들에게도 많이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운동도 다시 하고, 하나둘씩 놓치고 있던 것들을 회복해서 로하(아스트로 팬클럽 아로하)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내가 감당해야지“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빈은 연예계 동료 사이에서도 쾌활하고 밝은 성격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비보를 접한 동료들은 ‘최근에도 밝은 모습을 보였다’면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연예계 선배인 가수겸 배우 아이유는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인터뷰 내용의 공개를 미뤘고, 르세라핌 등 동료 아이돌들도 일부 일정을 취소하고 애도에 동참했다. 

아스트로 멤버들은 문빈의 비보에 빈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전했다. 군복무 중인 멤버 MJ는 휴가를 받아 빈소를 방문했고 진진, 윤산하 등도 빈소를 지켰다. 미국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차은우는 급히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 이후에는 예정된 스케줄을 소화하기로 결정했다. 차은우는 30일 예정된 한국과 태국 간 문화 교류 행사인 ‘커넥타이’(KonnecThai) 참여를 위해 태국으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잊혀지는 두려움
아이돌 그룹은 K팝 문화의 핵심이다. 철저한 훈련을 바탕으로 탄탄한 실력과 개성 있는 외모, 소속사의 기획력 등이 균형을 이뤄 완성하는 가치가 높은 문화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 데뷔전을 치른 후, 국내외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국내는 물론 해외 일정까지 숨 쉴 틈 없는 스케줄이 쏟아진다.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다음 앨범 출시를 준비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연예계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이 진리로 군림하고 있다. 인기를 얻기 시작한 아이돌 그룹이 멈추지 못하고 질주하는 이유는 ‘공백=잊힘’이라는 무서운 현실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소속된 아이돌 그룹 중 한 팀만 제대로 성장해도 회사가 급성장할 수 있는 구조다. 그만큼 많은 회사에서 아이돌 그룹을 내놓고 대중의 간택을 기다린다. 다양한 규모, 다양한 컬러의 그룹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대중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면, 다시 빛을 보기 어렵다.

걸그룹 버가부, 핫이슈, 루나솔라, 블링블링 등 1년을 채 못 버티고 해체하는 아이돌 그룹이 상당하다. 보이그룹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최근 종영한 보이그룹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피크타임’에는 데뷔했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묻혀버린 ‘무명’ 아이돌 그룹들이 출연해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들은 본인의 그룹명이 아닌 팀 24시 중 하나로 불리며 토너먼트를 이어갔다. 소속 그룹 이름을 밝히는 것은 최종 입상하거나 탈락할 때만 허락된다.

‘피크타임’은 그룹 멤버 중 한 명이 출연해 프로젝트 그룹으로 데뷔하는 형식이었던 다른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달리 그룹 전체가 출연해, 그룹 간 경쟁을 펼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출연진들은 ”팀 이름을 알리기 위해 꼭 살아남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는 인지도를 위해서다. 

아이돌 그룹이라고 하면 모두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하고, 그로 인한 힘듦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극히 일부의 이야기다. 무명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데뷔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모르더라“라고 말하고, 잠도 못자고 무대를 오를 줄 알았는데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는 날들이 이어졌다고 전한다. 

‘바쁘지 않은’ 아이돌은 무직이 아니지만 무직보다 못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관계자들은 ”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하면 정산금을 받을 근거가 없으니 문제“라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원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내와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주로 활동한 모 아이돌 그룹 출신의 멤버는 ”회사와의 계약이 해지된 이후에야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서 ”화려하게 꾸미고 일을 하는데 실제로는 궁핍한 삶을 몇 년이나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연이은 사망 소식에 외신들은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노력에 대한 지적을 내놨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픽사베이)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연이은 사망 소식에 외신들은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노력에 대한 지적을 내놨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픽사베이)

혹독한 육성 시스템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연이은 사망 소식에 해외의 시선도 곱지 않다. 문빈(25)의 사망 소식에 외신들은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노력에 대한 지적을 내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일(현지시간) “수많은 젊은 케이팝 스타들이 최근 몇 년간 세상을 떠났다”며 카라의 구하라와 에프엑스 설리, 샤이니 종현, 백퍼센트 민우 등을 언급했다. 가디언은 이런 선례를 들어 한국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가디언은 “케이팝 스타들은 10대 중반 또는 더 어린 나이에 기획사에 뽑혀 엄격한 통제 속에 생활하고, 대부분의 시간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설리에 대해서는 생전 오랜 기간 온라인 괴롭힘에 시달렸다는 점을 들어 그의 사망으로 한국에서 온라인 범죄와 악플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 방송 역시 케이팝 스타들의 사망 사례를 나열했다. BBC는 “문빈의 죽음으로 케이팝 아이돌들의 지나친 압박감이 조명되고 있다”면서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젊은 층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전체적인 자살률은 감소 추세지만 20대 자살률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초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는 꾸준히 지적받아 왔다. K팝 문화 산업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문빈의 사망소식과 함께 2019년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을 함께 예로 들어 “그들의 죽음은 한국의 가장 인기 있는 문화수출 산업 가운데 하나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에 대해 한국 스스로 성찰하도록 했다”고 꼬집었다.

K팝 문화의 경쟁은 완화될 필요가 있다. 아이돌 그룹은 고난이도 춤과 노래를 소화할 실력을 갖추면서도 팬들과 또래 느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연령대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어린 나이에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장시간에 걸쳐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 과정에서도 많은 연습생 사이에서 ‘월말 평가’ 등을 통해 매번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무대에 오를 수 있다. 무대에 오른 후에는 다른 그룹과의 무한 경쟁이 시작된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수면장애,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을 겪었다는 고백은 방송을 통해 여러번 전해진 바 있다. 경쟁 구도로 인한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근본적으로 경쟁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내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한 관계자는 “아이돌 멤버들이 어린 친구가 많다보니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모른 채로 마음에 병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면서 “긴장과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상미 기자 mii_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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