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 농업과 축산업은 심각한 변곡점에 서 있다.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그리고 글로벌 시장의 변화가 농촌 현장과 국민 식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낙농산업은 기후 문제가 구조적 문제와 만나 수입산 공세로 위기에 직면했고, 육지와 바다에서는 달라진 기후로 인해 주요 생산물의 종류가 달라지고 있다. 기후 변화로 달라진 우리 식탁 모습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망고, 파파야, 애플망고. 기후 변화로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재배하게 된 과일들이다. 한때는 낯선 외국 과일이었던 이 작물들은 이제 국내 재배는 물론 재배 면적도 빠르게 늘어나며 토종 과일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열대 과일, 20배 증가
아열대 작물 재배 면적은 불과 10년 사이 극적으로 확대됐다.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아열대작물 생산 및 소비 동향’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아열대 채소 재배 면적은 245헥타르(ha), 아열대 과수는 109.2ha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채소가 139ha, 과수가 193.1ha로 변화했다. 특히 과수 부문은 2017년 대비 1.7배 증가했다.
2023년에는 전체 아열대작물 재배면적이 4,126ha에 달해, 2020년(125ha)과 비교하면 20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농촌진흥청 공식 발표가 있었다(농민신문 2024.12.29, 연합뉴스 2024.12.21). 전남이 2,453ha(59%)로 전국 최대 산지로 부상했고, 경남, 제주, 경북 등 남부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지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경북도청에 따르면, 경북은 아열대 작물 면적이 2020년 34.7ha에서 올해 46ha로 5년여 만에 32% 이상 늘었다.
재배면적 확대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가의 선택이 맞물린 결과다. 전남도는 2020년 ‘아열대농업 육성 및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아열대과수 육성사업, 신소득 원예특화단지 조성사업 등에 200억 원 이상을 투입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제주도는 2024년 기준 바나나, 파파야, 커피 등 아열대 과수 재배 농가가 200곳을 넘어섰다.
아열대 작물의 재배 분포도 확대됐다. 제주와 남해안 일부였던 재배지가 전남, 경남, 경북 내륙까지 넓어졌다. 전통적으로 제주에서만 생산되던 만감류(한라봉, 천혜향 등)와 바나나, 파파야, 애플망고 등이 전남, 경남, 경북 동해안까지 확산되고 있다. 경북 경주, 포항, 영덕, 울진 등은 최근 45년간 평균기온이 0.63℃ 상승하며 1년에 8개월 이상 월평균 10℃를 기록, 아열대작물 재배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경주에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한라봉에 ‘경주봉’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고, 2025년 1월 기준 24농가, 9.5ha 규모로 재배되고 있다. 포항에서는 바나나 체험농장이 인기를 끌며, 지역 특산물로 자리 잡고 있다. 경남 창원, 진주, 거제 등지에서는 애플망고, 파파야, 용과 등 다양한 아열대 과수가 신소득 작물로 부상했다.
소득원 VS 기후위기
아열대 작물 재배 농가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과 함께 새로운 소득원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전남 진도에서 애플망고를 재배하는 농장주는 언론인터뷰에서 “난방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추석 대목을 겨냥해 수확 시기를 조절한다”면서 “최근 이상기상으로 사과·배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대체재로 애플망고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아열대 작물이 전통 과수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경제성 확보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망고는 경영비의 55%, 파파야는 60% 이상을 난방비로 쓰고 있어, 에너지 절감형 재배기술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항에서 아열대작물을 재배하는 한 농가는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국산 아열대 과일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높지만, 아직 경제성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체험용이나 선물용 등 한정된 수요를 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전지혜 소장은 “아열대 작물은 시설하우스 건립비, 난방비, 소비시장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에너지 절감형 재배기술 개발과 안정적 판로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라진 입맛, 달라진 식탁
아열대 작물 소비와 재배 확대는 단순한 기후 영향뿐 아니라, 음식 문화의 다양화, 유통·저장 기술 발달, 다문화 가정 확대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기후 문제만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동남아 여행객 증가로 현지에서 맛본 열대·아열대 과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망고 수입량은 2만 7천 톤으로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고, 키위, 파인애플, 아보카도 등도 수입과 국내 재배가 동반 증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아열대 작물의 소비와 재배 확대는 우리나라의 아열대 기후대 확대와 소비자 경향 변화, 다양한 음식 문화 수용, 유통·저장 기술 발달, 다문화 가정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정부와 지자체, 현장 농민, 전문가들은 “온난화로 인한 재배지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라며, 품종 개발, 기술 혁신, 시장 개척, 정책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대한민국 농업이 기후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남도는 2023년까지 아열대과수 육성사업, 신소득 원예특화단지 조성사업 등에 200억 원 이상을 투입했고, 국립농식품기후변화대응센터, 국립아열대작물실증센터 등 연구 인프라를 확충했다. 경남도는 2025년까지 아열대 작물 재배면적을 100ha 이상으로 확대하고, 에너지 절감형 시설하우스 보급, 병해충 관리 지원, 판로 개척을 위한 마케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아열대 작물 재배를 위한 구조적 해결책 마련에 대한 요구가 높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맞는 품종 개발과 재배기술 혁신, 병해충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친숙하면서 시장성이 높은 키위, 만감류 등 품목을 중심으로 농가의 도전과 정부·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이 더해질 때, 대한민국 농업은 기후위기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