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투데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재난은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촌 곳곳의 일상을 극한으로 내몰았다. 2024년 기후는 ‘최초’, ‘역대급’, ‘경신’이라는 키워드를 떼어 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사시사철이 온난한 기후를 자랑하던 우리나라 역시 기후 위기에 있어서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역사상 최고 기온, 온열 질환으로 인한 인명 피해, 산불 공포 등 올 한 해 나라 안팎의 기후 이슈를 정리해본다. <편집자 주>

▲올겨울 ‘극한 한파’가 찾아올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올 겨울은 따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진/뉴시스)
▲올겨울 ‘극한 한파’가 찾아올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올 겨울은 따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진/뉴시스)

2024년은 역대급 더위를 기록한 해였다. 여름을 점령했던 더위의 흔적은 우리의 가을과 겨울 풍경에도 손을 뻗칠 모양새다. 반팔과 반바지로도 땀을 흘려야 했던 추석 연휴가 그랬고, 첫눈은 대설주의보와 함께 찾아왔다. 

따뜻한 겨울과 폭설
올겨울은 평년보다 높은 기온과 잦은 폭설이 예측됐다. 올겨울 ‘극한 한파’가 찾아올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올 겨울은 따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폭설이 자주 내려, 온난한 기후 대비 ‘순한’ 겨울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중론이다. 기상청은 "올해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의 기온은 평년보다 높을 것"이라며 "확률은 약 80%"라는 분석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한 달 전 내놓은 전망을 180도 뒤집은 결과다. 기상청은 지난 10월 "시베리아 기단과 라니냐의 영향으로 올해 12월에는 평년보다 강한 추위가 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예측을 방증하듯 지난달 27일 내린 첫눈으로 수도권과 강원내륙·산지, 전북 동부, 경북 북동 산지, 충남 천안, 아산, 당진 등에 대설특보가 발효됐다. 이날 서울에 16㎝가 넘는 눈이 쌓여 1907년 10월 근대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11월 적설량'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존 최고 기록은 1972년 11월 28일의 12.4㎝였다. 서울에 가장 많은 눈이 쌓였던 적은 1922년 3월 24일로 31㎝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한반도 북쪽에 형성된 절리저기압의 영향으로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고 설명했다. 절리저기압은 대기 상층의 매우 빠른 바람인 제트기류가 일부 분리되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북극의 찬 공기를 머금고 있어 매우 차갑다. 북서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따뜻한 서해를 지나면서 눈구름대가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기압골이 수도권을 통과하며 서울을 중심으로 많은 눈을 뿌린 것이다.

뜨거운 해수가 왜
겨울철 평균 기온 전망이 조정되고, 폭설이 몰려오는 것은 고온 현상 탓이다. 당초 한파 예상의 근거였던 라니냐였다. 라니냐(La Nina·스페인어로 '여자아이'라는 뜻)는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한국의 겨울은 추워지는 경향이 있다. 동태평양의 수온이 낮아지면 반대로 서태평양의 수온은 상승하는데, 이런 수온 차이에 의해 대류 현상이 활발해진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북쪽의 시베리아 기단이 강화돼, 춥고 건조한 북서계절풍이 한반도에 유입된다. 이 때문에 라니냐가 발생하는 해에는 보통 '역대급 한파'가 예고됐다.

기상학계는 특히 지난해 전 세계적 고온 현상을 일으킨 엘니뇨(El Nino·스페인어로 '남자아이'라는 뜻)가 매우 강하게 나타난 만큼, 올해는 그만큼 강한 라니냐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해왔다. 일반적으로 엘니뇨와 라니냐 현상은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예측대로 올겨울과 함께 라니냐가 시작됐지만,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인해 따뜻해진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좀처럼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명인 UNIST(유니스트)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폭염연구센터장)는 "늦가을까지 이어진 이상 고온 현상이 물러나지 않고 라니냐와 동시에 한반도 기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평균보다 높은 해수면 온도가 겨울까지 지속되며 한반도 주변에 고기압을 발달시키고, 이 고기압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북풍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3일간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13~15도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최고 기온은 2~7도였다.

기온 자체는 평년보다 높지만, 폭설 빈도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이 교수는 "기온이 올라갈수록 대기 중 수증기량도 늘어나는데, 대기 중에 가득 찬 수분은 여름철엔 폭우로, 겨울철엔 폭설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상 고온과 라니냐가 서로 세력 다툼을 하기 때문에 폭설이 내렸다가 다시 급격히 따뜻해지는 날이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여름 추석, 가을 모기
역대급으로 더운 여름에 가을 풍경도 달라졌다. 여름철 불청객이던 모기는 가을로 활동기를 옮겼다. 더위에 활동을 하지 못했던 모기가 가을에 극성을 부려 가을 야외활동의 방해꾼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기가 활동하는 기온은 15~30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 주기적으로 비가 내리는 환경을 좋아하지만, 폭우에는 활동이 힘들다. 낮 30도가 훌쩍 넘어가고, 국지성 호우가 쏟아진 이번 여름은 도무지 모기가 살아갈 환경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올 여름은 모기의 공격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름에 활동하지 못했던 모기가 가을에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기개체수를 측정하는 서울 시내 디지털모기측정기(DMS) 수집 정보에 따르면, 보통 모기는 6월 중순에 증가하기 시작해 8월 중순에 정점을 찍은 뒤 줄어들었지만, 올해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서울시내 54개소 DMS에서 채집한 자료(하루 평균 채집 모기 개체 수, 서울시·중앙일보)를 보면 6월에 2282마리로 정점을 찍고 7월과 8월에 각각 2023마리, 1739마리로 차츰 줄어들었지만, 9월에 1850마리를 기록하며 다시 늘어났다.

추석은 가을 날씨가 아닌 찌는 더위와 함께 했다. 올 추석에는 전국 대부분이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았고, 체감온도는 33~35도에 달했다. 추석 당일 기상청에 따르면, 추석 전날과 추석 당일 사이 밤 대부분 지역이 열대야를 겪었다. 서울에서도 사흘 만에 다시 열대야가 나타나 ‘기상관측 이래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인천과 대전 등도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이 바뀌었다.

기온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추석이 가을이 아닌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내에서 기상학적으로 가을은 ‘일평균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내려간 뒤 다시 오르지 않았을 때 그 첫날’로 정의한다. 평년(1991∼2020년 평균) 가을 시작일은 9월26일이다. 이 때문에 추석이 기상학적 계절로 여름에 드는 일이 이례적이지는 않다. 다만 추석에 더위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올 추석 즈음의 평년 최고기온은 24~28도로 올해 추석보다 5도 가량 차이가 있었다. 

▲겨울철 평균 기온 전망이 조정되고, 폭설이 몰려오는 것은 고온 현상 탓이다. (명동거리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겨울철 평균 기온 전망이 조정되고, 폭설이 몰려오는 것은 고온 현상 탓이다. (명동거리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달라질 사계절
기상학계에서는 우리나라 사계절이 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인 교수는 "세계 기상학계는 이미 올해 지구 기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을 것으로 내다본다"며 "지구 온난화로 우리의 사계절이 앞으로는 더 혼란해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기후 변동성에 영향을 주는 복합적 요인을 들여다보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계절의 기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여름이 길어지는 추세에 따라 계절에 대한 기존의 기준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8울 국립기상과학원 주관으로 열린 ‘온난화에 따른 계절 길이 변화 및 부문별 영향’ 포럼에서는 “여름이 점점 길어지고 겨울과 봄이 짧아지는”(최영은 건국대 교수) 변화에 따른 대응 방안 등이 논의됐다. 

기상청이 적용하는 정확한 계절 기준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선 3개월 단위로 3~5월을 봄, 6~7월을 여름, 9~11월을 가을, 12~2월을 겨울이라고 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기상청은 계절별 길이를 조정하는 방안을 내부 논의 중이다. 기상청 기후변화 상황지도에 따르면 2050년께인 21세기 중반에는 현재 97일 안팎인 여름철이 117~131일까지 늘어나고, 21세기 말인 2100년쯤엔 여름철이 129~169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 장동언 기상청장은 “각계 전문가들과 여름을 포함한 한반도의 계절별 길이 전반에 대한 재설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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