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 날씨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식료품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직간접적 경제적 비용이 상승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가 이어지면서 커피와 카카오, 설탕, 올리브유 등의 작황이 부진해지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우리나라 역시 계절 과일, 김장철 채소, 우리 식탁 위의 친숙한 식재료까지 귀하신 몸이 되는 모양새다. 달라진 식탁, 식량 위기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한 가운데 지난 10일 충남 홍성군 남당항 김 양식장에서 추위에도 어업인들이 김 수확을 하고 있다. (사진=홍성군 제공)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한 가운데 지난 10일 충남 홍성군 남당항 김 양식장에서 추위에도 어업인들이 김 수확을 하고 있다. (사진=홍성군 제공)

겨울철 횟집에는 ’대방어‘가 효자 어종이다. 겨울철 인기 수산물 중 하나인 방어는 겨울철에 지방질이 많고, 근육조직이 단단해져 맛이 좋아진다. 겨울철 별미이지만 가격이 비싼 어종으로 인식되던 방어가 동해안 어획 1위가 되었다. 지구 온난화로 상승한 해수 온도 탓이다.

동해 대세, 이제는 방어
국립수산과학원이 발간한 ‘2024 수산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방어, 전갱이, 삼치는 지난 40년간 어획량이 꾸준히 늘었다. 해수 온도 상승이 직접적 원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연근해 평균 수온은 56년간 1.44도 올라 전 지구 평균의 2배에 이르는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특히 동해에서는 수온이 1.9도 올라 서해가 1.27도, 남해가 1.15도 오른 것과 비교해 상승 폭이 컸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어종 중 하나는 방어다.

강원특별자치도 글로벌본부의 어획 동향을 살펴보면 2017년까지만 해도 방어는 어획량이 적어 집계조차 되지 않는 소수 어종이었다. 그러다 어획량이 점차 늘면서 이제는 동해안의 '대세'가 됐다. 특히 2022년과 2023년에는 어획량이 각각 6천137t, 4천787t을 기록해 방어가 2년 연속 동해안 어획량 1위를 기록했다. 수산 당국은 수온 상승으로 강원 앞바다가 방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뀐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따뜻한 바다는 아열대성 어종에게 유리한 서식 환경이 되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연안 정치망의 아열대성 어종 출현을 조사한 결과 제주 29.4%, 동해 13.2%, 남해 12.6% 순으로 높은 출현 비율을 보였다. 대표적 아열대성 어종은 참치다. 해수 온도 상승 이후 대형 어종, 특히 참치가 동해안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특히 30kg 이상의 대형어 어획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참다랑어 어란 및 자치어가 제주 남부 및 동해 남부, 독도 주변 해역까지 광범위하게 출현했다. 지난해 6월에는 강릉 주문진 앞바다에서 무게 160㎏에 달하는 초대형 참치가 정치망 그물에 걸려 위판됐다.

씨 마른 명태, 귀하신 몸 '금징어’
참치와 방어의 등장은 마냥 환영할 일이 아니다. 다양한 어종의 어획이 가능했던 우리 바다는 주 어획 종들의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씨가 마르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980년대(1980~1989년) 151만 톤 수준에서 2000년대(2000~2009년) 116만 톤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한 바 있는데, 최근 2020년대(2020~2023년) 들어서는 93만 톤 수준으로 감소세다.

오징어는 2010년대부터 어획량이 급감했고, 멸치와 고등어도 감소하거나 정체 상태다. 동해안에서는 오징어의 어획량이 2014년 9천846t에 달했지만, 매년 점차 줄어들어 지난해 1천385t에 그치며 1위 자리를 방어에 내어줬다. 수산 당국은 동해 수온 상승과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급격한 해수 온도 변화로 인해 오징어장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오징어는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하다. 기후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표층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중국 어선들의 남획 대상이 되기도 해 밥상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과거 피서철이면 동해안에서 매년 열리던 오징어 맨손잡이 등 관련 축제도 대부분 열지 못하고 있다.

명태 역시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이제는 동해안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해양수산부가 고갈된 명태 자원을 회복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수정란을 부화해 키운 어린 명태를 바다에 푸는 '명태 살리기 사업'을 10년째 하고 있지만 바다 환경 변화에 발맞추기는 역부족이다. 명태의 주산지로 관련 축제까지 열던 고성에서는 이제 '명태 없는 명태 축제'를 열어야 할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도루묵도 씨가 말랐다. 도루묵은 동해안에 서식하는 대표 어종 중 하나였다. 동해안은 전국 도루묵 위판량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도루묵 전체 어획량을 책임지는 큰 시장이었으나 옛말이다. 겨울철 수온이 올라 적정 산란 수온의 형성 기간이 짧아지면서 연안으로 유입되는 어군이 감소해 생산량에도 영향을 끼친 탓이다.

수산업자들은 울상
어장 지도의 변화는 어민들의 가정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게다가 조업량이 줄어든 대표 어종이 서민들의 식탁에 주로 오르는 일상적 식재료였던 탓에 식생활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바다의 어장 지도 변화가 우리 식탁에서 '식품가뭄'을 실감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오징어의 어획량 감소가 가져온 결과는 처참하다. 국민 식재료였던 오징어가 '금징어'가 되면서 소비자들이 대체재를 찾기 시작하자 매입량도 줄었다. 어획량이 줄어든 데 더해 악재가 이어지자 어민들의 수입이 줄어들고 어민 중 상당수는 조업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수 온도 상승은 양식업에도 악재다. 이상 수온으로 양식 생물의 질병이 속출한다는 보고다. 국립수산과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여름철 양식생물의 한계 수온을 웃도는 고수온이 발생하면 생체 내 대사와 면역력 등 생리 기능 약화로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상태가 돼 폐사가 발생한다. 독성해파리가 출현하거나 패류독소의 출현도 증가한다.

▲설 연휴를 앞두고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가 열린 지난 23일 충북 청주시 육거리종합시장의 행사 참여 점포에서 한 시민이 수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설 연휴를 앞두고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가 열린 지난 23일 충북 청주시 육거리종합시장의 행사 참여 점포에서 한 시민이 수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수 온도 상승으로 어획량이 늘어난 어종 역시 수산업자들에게는 효자가 아니다. 대형 어종은 가정의 식재료로 활용되지 않고, 고가의 식재료이다. 고가의 생선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어획량이 늘어 가격이 떨어져도, 체감 하락가는 크지 않다. 또한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가정 경제에 어려움이 많아지면서 고급 재료의 소비량이 줄어들었다. 

어획량이 늘어 위판가격이 뚝 떨어진 데다 소비 위축으로 매입량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제주 등 방어 출하의 중심이 되는 지역의 어민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어 하락 및 수온 상승으로 강원도 일대에서도 방어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도매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마트 등 다양한 공급책을 마련하여 '저렴한 방어' 이미지를 구축하여 소비를 촉진하는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어장 지도의 변화로 인해 소비자도 공급책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우리나라 앞바다가 앞으로 더 뜨거워질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우리 앞바다는 다른 어장에 비해 크게 수온이 상승한 데다 수온 상승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우리나라 바다 수온이 2100년까지 시나리오에 따라 1∼4도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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