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 날씨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식료품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직간접적 경제적 비용이 상승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가 이어지면서 커피와 카카오, 설탕, 올리브유 등의 작황이 부진해지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우리나라 역시 계절 과일, 김장철 채소, 우리 식탁 위의 친숙한 식재료까지 귀하신 몸이 되는 모양새다. 달라진 식탁, 식량 위기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K-푸드는 경기 불황에도 성장하는 우리의 효자 시장이다. 특히 국민 반찬 '김'은 비빔밥과 불고기뿐이었던 한국 음식의 새로운 맛을 알린 효자상품이자 K-푸드 열풍의 선봉에 있다.
길어야 100년
우리 식탁의 단골손님이자 K-푸드 열풍의 중심인 김을 우리 식탁에서 볼 날이 채 100년도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나라 김의 최대 생산지는 전남으로 전체 생산량의 80%가 전남에서 생산된다. 지난해 나라살림연구소 보고에 따르면 기후 위기 수온이 상승하면서 김 작황 부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해역 표층 수온은 1968년에서 2022년 사이 1.36도 상승했다. 같은 시기 세계 수온이 0.52도 상승한 것에 비해 큰 폭의 상승이 분명하다. 김의 생장에 적정온도는 10도 미만으로 주로 우리나라의 10월에서 5월 사이이다. 때문에 수온이 오르면 김의 생장 가능 기간이 짧아지고, 이로 인해 김 생산 시기가 점차 짧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김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 전남지역 김 생산량은 2023년 기준, 평년 대비 15% 감소했다. 게다가 수온 상승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미국 메인대 기후변화 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해수면 온도는 전년 대비 0.25도 상승했다. 이는 지난 30년에 걸쳐 올라간 폭에 달하는 수치다. 해양수산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바다의 연평균 해수면 온도는 관측 이래 가장 높았고, 남해는 20년간 평균치보다도 0.5도 더 많이 올랐다. 현재 추세라면 80년 후에는 남해안에서 김 생산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가격 폭등
김 생산량의 감소로 국민 반찬이었던 김이 '귀하신 몸'이 될 지경이다. 김 가격은 2년 전부터 꾸준히 오름세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김의 생장에 최적기인 5월(2024) 김밥에 쓰이는 마른김의 월평균 도매가격은 한 속(100장, 260g)당 1만89원으로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섰다. 2023년 같은 기간(5603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80% 넘게 오른 수치다. 밥반찬으로 즐겨 먹는 조미김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대천김, 광천김, 성경식품 등 중견 조미김 제조업체 3곳이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업계 2위 대기업인 CJ제일제당도 이달 초 김 제품 가격을 평균 11.1% 올렸다.
가격 상승의 원인은 작황 부진이다. 우리나라는 물김 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일본과 중국의 원초 흉작 여파로 김 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김 생산량이 많은 일본이 최근 이상고온으로 바다 온도가 상승하고 적조 현상이 발생하며 원초 생산이 급격히 줄었다. 한·중·일은 전 세계 김 생산을 담당하는 주요 3국으로 한국이 전체 생산량의 65~70%, 일본이 25~3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일본 생산량이 절반 정도 쪼그라들며 한국산 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일찌감치 한국산 김 대량 구매에 나선 일본 식품업체들을 비롯해 수출로 물량이 빠져나가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김이 부족한 상황이 됐다.
김 가격이 오르는데 원초인 물김은 가공하지 못하고 폐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졌다. 국내는 작황이 좋아 생산량이 늘어난 것이 호재가 아닌 악재가 됐다. 마른 김의 가격 고공행진과 달리 산지에서 양식 어가가 생산하는 물김 가격은 1년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협중앙회 집계를 보면 지난 11∼22일 물김 ㎏당 위판 금액은 588원으로 작년 동기(1609원)보다 63% 급락했다. 지난 21일에는 ㎏당 가격이 500원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해수부와 전남도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까지 진도군과 해남군 두 곳에서 폐기된 물김만 2400t에 이른다. 해수부는 마른김 업체들이 물김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을 기대하면서 관망하고 있는 것도 물김이 버려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봤다. 실제로 이렇게 된 데엔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신규 양식을 허가해 양식 면적이 늘어난 데다 작황이 좋아졌고 불법 양식까지 늘어나 물김 생산량이 급증한 영향이 컸다. 경매에서 유찰돼 폐기되는 물김도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바다는 사막
호황인 김에 비해 제주 바다의 갈조류는 모습을 감췄다. 갈조류는 소라와 전복 등 대표적인 제주 수산물들의 먹이이다. 기후변화로 수온이 올라가면서 갈조류가 점점 사라지고 갯녹음 현상의 주범인 홍조류가 확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제주해양수산연구원이 공개한 '2023년 마을어장 자원생태환경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연안에는 총 156종(녹조류 25, 갈조류 26종, 홍조류 110종)의 해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어장 내 주요 먹이원인 갈조류는 감소한 반면, 석회조류를 포함한 홍조류가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일부 남부지역에서는 석회조류가 확산해 어장 내 갯녹음 현상이 더 심화(갯녹음 80% 이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석회조류인 아열대성 해조류가 확산, 어장 내 수산물의 먹잇감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고 연구원은 진단했다.
아열대성 부착산호류인 빛단풍돌산호와 거품돌산호는 제주 북동부(구좌)와 추자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으로 분포대가 넓어지고 있다. 연구원은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상승으로 아열대 및 열대성 해조류와 생물량이 증가하면 어장 생태계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유용 수산생물인 우뭇가사리, 감태, 미역, 소라, 전복의 서식처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제주 바다의 사막화는 우리 전통 유산인 '해녀'의 존속도 위협한다.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녀’는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2024년에는 전국해녀협회가 출범했다. 전국 단위로는 최초의 해녀 단체이지만, 정작 해녀들 사이에서는 전업에 관한 고민이 상당하다.
바다가 사라지고 해양 생태계가 무너지니 해녀도 버틸 재간이 없다. 제주도 통계를 보면 2023년 제주도에서 활동한 해녀 수는 2839명이다. 1970년(1만4143명)에 비해 5분의 1로 줄었다. 최근 5년간 매년 약 200명씩 해녀가 줄고 있다. 제주 해녀의 90.3%(2565명)는 60세 이상이다. 50대가 6.1%(175명), 40대가 2.3%(66명)다. 30대는 0.9%(27명), 20대는 0.2%(6명)뿐이다.

땅에서 자라는 김
해수 온도의 상승이 계속되면 바다는 더 이상 안전한 서식지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김을 재배하는 방법이 고안됐다. 정부와 국내 식품기업들은 육상 김 양식에 주목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내년부터 5년간 총 350억 원을 투자해 새만금에 세계 최초로 육상 김 양식 재배단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전북도, 군산시 등과 함께 내년 상반기 새만금 수산식품 수출가공 종합단지 착공을 시작해 내년 말까지 육상 양식 물김 연구와 마른 김을 가공할 수 있는 생산시설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육상 김 양식 개발 사업에는 풀무원과 CJ제일제당 등 국내 12개 식품기업이 참여한다. 이들 기업은 이후 새만금 종합단지에 입주해 이르면 3년 안에 땅에서 양식된 김을 식탁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육상 김 양식은 큰 수조 안에 바다와 유사한 생육 환경을 조성해 김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후변화와 같은 제어할 수 없는 환경에 따른 위험 요인을 최대한 줄여 갯병 등 병해 감염을 예방하고 해수온 상승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기존 해상에서는 김 성육 수온인 5~15도가 유지되는 10월부터 4월 정도까지만 양식이 이뤄졌다면 수조 안에서는 사계절 내내 양식이 가능해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해상 양식보다 최대 100배가량 높다고 알려진다.
풀무원은 2021년부터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진행해왔다. 바이오리엑터(생물 반응조)로 불리는 큰 수조 안에서 김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방식이다. 2022년에는 전라북도와 수산양식분야 공동연구 업무협약을 맺고 올해 3월에는 육상수조식해수양식업 허가를 취득, 충북 오송에 위치한 풀무원기술원 파일럿 시설 안에서 월 10kg 이상의 육상 양식 물김을 생산하고 있다. 같은 달 마켓 테스트의 일환으로 자사에서 운영 중인 비건 인증 레스토랑 플랜튜드 코엑스점에서 육상 양식으로 수확한 물김을 활용한 들깨물김칼국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2018년 기술 콘셉트 사전 테스트를 시작한 CJ제일제당은 2022년 3톤 수조 배양에 성공, 지난해 전용 품종을 확보했다. 2025년에는 파일럿 생산 규모를 10톤 이상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동원 F&B는 올해 10월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와 김·해조류 스마트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대상도 해조류 연구센터를 통해 지난해부터 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육상 김 양식은 철저한 관리 아래 김을 재배하기 때문에 갯병 감염을 예방할 수 있고 해양 오염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며 “새만금 수산식품 수출가공 종합단지에 조성하는 ‘육상 김 R&D센터’를 통해 2027년 안에 마른 김뿐 아니라 김 스낵 등 첫 육상 김 양식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