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차별
보이지 않는 차별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3.06.16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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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성별차별, 성적 취향 존중까지… 사회가 발전하면서 눈에 보이는 차별은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최근 접한 넷플릭스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빨강머리 앤』 에서도 차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누구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빨강머리 앤』(원타이틀 : Anne with an 'E')은 원작과는 많이 다르다는 평이다. 동성애 친구 이야기며, 길버트의 흑인 친구, 인디언 이야기 등등은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에피소드는 아마 시대를 반영해서 끌어들이고 싶은 사회적 이슈가 아니었을까 싶은 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반면, 앤 성격은 원작과 비슷하게 그 특유의 발랄함, 활달함, 때문에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 역시 개인적으로는 지나치리만큼 ‘날뛰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어떤 때는 현실과 환상을 헷갈려하는 정신질환자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앤>이 이 정도로 방방 뛰는 소녀였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변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설정이 좀 억지스럽기도 했다.  

왜 앤의 캐릭터를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이 보다 더 날뛸 수는 없다’가 돼 버렸을까? 원작의 덜 발랄하고, 더 신중하고, 때때로 보이는 차분한 이미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넷플릭스의 시리즈를 본 이들 중엔 ‘앤은 없다’라고 할 정도다. 그래도 인기를 끌었으니 이 또한 대중이 바라는 캐릭터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성공한 주인공은 대부분 내성적인 캐릭터를 가지지 않는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온몸으로 부딪히고, 돌진하고, 맞서서 싸운다. 앤 역시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이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그들과 함께 한다.   

드라마나 영화만 그런가?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서, 성공을 위한 지침서라고 하는 책들은 어김없이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위해 먼저 나서라고 말한다. 외향성은 성공의 지름길이요, 내향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말한다. 때문에 성공을 위해서는 용기를 내고 내향성을 버려야 한다.  

우리 사회 역시 알게 모르게 외향성으로 되기를 교육을 받고 거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이는 낙오자 혹은 문제아라고 생각한다. 만약 학교에서 우리 아이가 그렇다면 부모는 속상해하며 당장 어떻게든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회사생활에선 무조건 인맥을 쌓고, 인간관계를 잘하고 남들에게 자기주장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이 되라고 부채질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앤처럼. 앤처럼 되지 못했기에 그 모양 그 꼴이라며... 

과연 내향성은 사회생활을 위해선 정말 버려야 할 것이고, 문제 있는 것일까? 내향성이 강한  나로서는 이 또한 차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수전 케인 역시 이 부분에 주목하고, 그녀의 책 『Quiet 콰이어트』 에서 내향성을 가진 이들은 신중한 기질로 월스트리트같은 증권가에서 신중함을 무기로 성공하고, 집단적 사고보다는 나 홀로 작업으로 훨씬 더 뛰어난 결과를 얻는다고 말한다. 내향성향의 사람들은 그 성향에 맞게 일을 해나간다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녀에 의하면 간디, 스티브잡스, 엘리너 루즈벨트, 워런 버핏, 로자 파크스, 앨 고어 등은 내향성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내향성 덕분에 특정한 일을 달성했다고 본다.

사람의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내향성향의 사람이 외향적으로 바뀌는 것도 마찬가지. 억지로 고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병만 생길 뿐이다. 

성공을 위해 내향성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외향성이 갖지 못하는 뛰어남이 있고,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모두가 세일즈로 성공할 게 아니라면...

내 전화기에 수 백 개의 전화번호가 있다는 건 자랑도 아닐뿐더러 실제로 그리 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외향성을 가지는 노력은 이제 그만...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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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이 2023-07-07 10: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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