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 날씨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식료품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직간접적 경제적 비용이 상승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가 이어지면서 커피와 카카오, 설탕, 올리브유 등의 작황이 부진해지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우리나라 역시 계절 과일, 김장철 채소, 우리 식탁 위의 친숙한 식재료까지 귀하신 몸이 되는 모양새다. 달라진 식탁, 식량 위기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설을 앞두고 지난 23일 부산 부산진구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차례 지낼 때 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뉴시스)
▲설을 앞두고 지난 23일 부산 부산진구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차례 지낼 때 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 설 차례상 준비로 곳곳에 한숨이 깊다. 올해 설 명절 차례상 비용은 역대 최대 비용일 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얇아지는 주머니와 달리 치솟는 물가에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상차림 비용 40만원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은 4인 가족 기준 최대 40만원 선이다. 올해 설 차례상 비용(4인 기준)은 전통시장 30만2500원, 대형마트 40만9510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전통시장은 6.7%, 대형마트는 7.2% 각각 상승한 수치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서울 25개 자치구의 백화점(12곳), 대형마트(25곳), 기업형 슈퍼마켓(18곳), 일반 슈퍼마켓(19곳), 전통시장(16곳) 등 90곳의 설 제수 23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품목별로 보면 과일 구매가만 평균 7.3% 상승했고 수산물(-3.0%), 가공식품(-1.9%), 축산물(-0.8%), 채소·임산물(-0.4%) 등의 가격은 모두 내림세를 보였다. 과일 중에서는 사과 (5개) 구매가가 13.7% 올라 상승 폭이 가장 컸으며, 다음으로 단감(8.4%), 시금치(5.9%), 쇠고기(탕국용·양지, 4.0%), 두부(3.6%) 등의 순이었다. 사과는 이른바 '금(金)사과'로 불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가격이 15.2% 하락했지만, 평년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유통업체별 제수 구입비용을 보면 전통시장이 평균 24만8천761원으로 가장 저렴했지만, 3주 전(24만1천450원)과 비교하면 평균 3.0% 상승했다. 

조사 주체별 대동소이하지만 전년 대비 상승한 금액이라는 점이 공통이다. 또한 역대 최대 수준의 금액이기도 하다. 올 설 차례상 가격의 상승은 이상기후 여파로 과일과 채소류 가격이 오름세를 보인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상 기온으로 제수용 과일인 사과, 배의 가격은 물론 무 등 채소류의 가격도 상승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기준으로 지난해 설과 비교해 과일류는 57.9%, 채소류는 32.0% 각각 급등했다. 반면 나물류와 수산물, 약과·유과 등 과자류 가격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채소류에서는 무 한 개가 2000원에서 4000원으로, 배추 한 포기가 4000원에서 7000원으로 각각 100%, 75% 올랐다. 이는 작년 여름 생육 부진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최근 한파로 인한 공급량 감소가 겹친 결과다.

대형마트의 경우도 과일류와 채소류 가격이 전년 대비 각각 48.9%, 26.4% 상승했다. 나물류와 수산물도 각각 15.5%, 4.9% 올랐다. 부사 사과(3개)는 7.4% 오른 2만 1240원, 배(3개)는 두 배 가까이 오른 3만 4960원에 판매되고 있다.
더불어 일각에서는 가격 인상 요인을 제때 반영하지 못한 업체들이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가격을 올리고 있단 분석도 나온다. 앞서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물가 관리를 위해 식품·외식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촉구해왔지만 탄핵 정국 속 물가 관리 콘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못하며 물가 상승이 현실화하고 있단 관측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계엄 및 탄핵 정국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농축수산물 소비자물가지수는 122.32로 전년 동월(119.27) 대비 2.6%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1.9%보다 높은 수준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던 2017년 1분기(1∼3월)에도 관련 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7.5% 상승한 바 있다.

할인율 대폭 인상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할인율을 대폭 인상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설 민생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900억원을 투입해 농·축·수산물을 최대 반값에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농축산물의 경우 정부 지원 20%와 생산자·유통업체 할인 20%를 합쳐 최대 4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수산물은 정부 지원 20%와 유통업체 할인 최대 30%를 더해 최대 50%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대형마트들도 이런 기조에 맞춰 다양한 할인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마트는 15일까지 배추, 무, 사과, 양파 등을 20% 할인하며, 수산물은 품목에 따라 최대 50%까지 할인한다. 홈플러스는 23~29일 사과, 무, 배추에 20% 정부 할인을 적용하고, 롯데마트도 다양한 농·축·수산물에 대해 정부 할인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온누리상품권으로 농축산물 혹은 수산물을 각각 3만 4000-6만 7000원 구매하면 1만 원 상품권을, 6만 7000원 이상 구매하면 2만 원 상품권을 각각 환급받는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할인율도 10%에서 15%로 올렸다.

이동훈 한국물가정보 팀장은 "평년보다 이른 설과 최근 한파 영향으로 일부 품목의 가격이 높게 형성됐다"며 "저장 기간이 긴 품목은 미리 구매하고, 변동이 잦은 채소류는 기후 변화에 맞춰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22일 오후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설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22일 오후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50년 후엔 사과 없어
기후전문가들은 제수 과일의 가격 급등에 대해 "현재는 비싸지만, 미래엔 없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기후 위기로 인해 생산량이 줄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제수 과일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상차림의 원칙 중 하나인 '홍동백서'가 미래의 차례상에는 사과와 배로 오르지 않을 수 있다.

2079~2100년 한반도 기후 변화 상황을 예측한 'A1B' 시나리오에 따르면, 사과와 배는 이미 차례상에서 사라진 후이다. 이는 이미 IPCC가 2007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인근의 해양, 기온 변화가 우리 먹거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한 내용이 담겨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차례상에 오르는 대표 과일 사과는 50~100년 후에는 설 차례상에서 사라진다. 사과는 여름철 평균 기온이 26도를 넘지 않고 겨울철 기온이 10.5도 이하로 떨어지는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여름철 평균기온은 25.6도로 평년보다 1.9도 높았다. 이는 197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여름은 6월 중순 이후로는 기온이 꾸준히 평년보다 높았다. 또한 일반적으로 비온 뒤 기온이 떨어지는 장마철 기간에도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다. 

이 추세라면 사과, 배 등 과일은 점점 품질이 떨어지다 더 이상 재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사과와 배의 자리는 감귤이나 멜론, 참다래와 같은 아열대성 과일이 대신하게 된다. 또한 삼색나물 역시 도라지, 시금치, 고사리 등의 출하량의 감소로 가격이 상승해 제수용 나물로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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