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섬의 미학
물러섬의 미학
  • 김민희 배우
  • 승인 2022.06.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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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체념은 인생길을 나서는 준비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쇼펜하우어-

사전에서 '체념'은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또는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 씌어있다. 
실패와 좌절을 겪고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을 때 깨끗하게 단념하거나, 어떠한 도리와 이치를 깨닫고 욕심을 버리는 것을 체념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건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체념을 통해 나 자신을 지키는 기술을 깨우쳐야 할 때도 있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함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포기한다고 해서 하찮은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체념한다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감사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삶을 지탱하고 나를 발전시키기도 한다. 다만 집념이 아닌 집착이 된다면, 그 집착을 버려야만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진다. 
버릴 줄 아는 것이 집착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하며, 나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게도 한다.

잠시 멈춤. 한 발짝 물러섬. 그것들이 갖고 있는 대단한 힘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끔도 한다.

"우리는 영혼의 자유를 얻기 위한 몽테뉴의 싸움을, 이젠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는 지나간 역사의 싸움으로만 여겨 멀리서만 존중했다. 청춘이 사라져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고, 건강이 없어져야 그 귀중함을 알고, 우리 영혼이 가장 소중한 핵심인 자유를 뺏기는 중이거나 이미 빼앗긴 다음에야 비로소 그 귀함을 안다는 것이 인생의 비밀스런 법칙이다."

"작은 장소에 묶여있는 사람은 작은 근심에 빠진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몽테뉴는 거듭, 우리가 근심이라 부르는 것은 자체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키우거나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그 자체 무게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부여한 무게를 지닌다. 가까이 있는 것이 멀리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근심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작은 척도로 움직일수록 작은 것이 더 많은 근심을 만들어낸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
<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

이미 잃어버린 것에 소중한 가치를 둔다는 것은 어리석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근심의 무게를 내가 부여할 수 있는 거라면, 그 크기를 줄이거나 늘이는 것도 얼마든지 내가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에 같은 근심이라 할지라도 같은 크기로 적용될 순 없다.
하지만 아닌 것을 빠르게 체념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이 삶의 질을 결정짓게 될지도 모른다.

관용과 타협도 또 다른 체념의 모습이다.
절대적인 가치 때문에 인류가 겪어온 불행들은 다른 이의 신념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나 이념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가르고 싸우게 했다.
옳고 그른 절대적 가치도 중요할 순 있겠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그들의 생명과 인격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나의 신념에 반하는 다른 이에게 관용을 베풀거나 타협을 하는 일은 꽤 올바른 체념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중국의 작가 린위탕은 이런 말을 남겼다.
"때로는 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보다 중요하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잘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함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할 수 없는 것에 매달려 그것을 할 수 없단 것조차 모르고 있다면 그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내면은 거울에 비치듯 한눈에 보기 어렵다.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나를 만날 수가 없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그것을 찾으려면 깊은 성찰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체념'은 때론 슬프게 들리기도 하지만, 용기가 있어야 한다. 
깊은 성찰을 통해 용기내어 하는 물러섬은, 내 삶을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할 것이라 믿는다.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김민희 배우 calnews@naver

배우 김민희

만 6세인 1982년 KBS 성탄특집극 《집으로 가는 길》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에 들어선 아역스타 출신이다. MBC베스트극장에서 다수의 주인공 역을 시작으로 SBS 대하드라마 《여인천하》, MBC 주말연속극 《여우와 솜사탕》, 등을 통해 안방극장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특히 1997년 MBC 일일연속극 《방울이》에서 주인공인 방울이 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은 연기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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