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3대 유턴(U-turn)과 리더의 직관력
역사를 바꾼 3대 유턴(U-turn)과 리더의 직관력
  • 송은섭 작가
  • 승인 2022.02.2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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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대부분 현재의 일에 집중하고, 관리자들은 효율과 효과성에 집중하면서 주, 월, 연간단위로 업무를 생각한다. 당신이 리더라면, 조직이 지금 어느 선상에 있으며 미래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직관할 수 있어야 한다. - 존 맥스웰, <리더십 불변의 법칙> 저자 -

“나는 압록강을 건너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살길을 찾아 개경으로 돌아간다.”
“남산으로 가! 아니야 유턴해서 육군본부로 가!”
“9공수는 부대로 복귀하라!”

위 말들은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3대 유턴(U-turn)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려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에서 부하들에게 유턴(U-turn)의 이유를 설명한 말이다. 두 번째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어디로 갈까요?”라는 질문에 “남산으로 가, 아니야 유턴해서 육군본부로 가”이다.(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나오는 대사다.) 세 번째는 12·12 군사반란 시 진압군 측 9공수여단의 서울진입을 막기 위해 반란군의 ‘신사협정’에 속아 육군본부에서 무전으로 지시한 ‘9공수여단 복귀 명령’이다.
당시 유턴(U-turn)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시 쓰였을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리더는 어떤 직관력을 발휘했는지 3대 유턴(U-turn)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회군하여 정변을 일으키는 편이 났겠다고 판단했을 이성계는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사진은 SBS드라마 흑룡이나르샤 중에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회군하여 정변을 일으키는 편이 났겠다고 판단했을 이성계는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사진은 SBS드라마 흑룡이나르샤 중에서)

① ‘위화도 회군’, 이성계는 상황과 트렌드를 읽는 직관력이 있었다.

‘위화도 회군’에서 이성계의 직관력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상황과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다. 이성계는 전쟁터에서 사지(死地)와 생지(生地)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그에게 우왕과 최영 장군의 ‘요동 정벌 명령’은 자신을 사지(死地)로 내몰려는 계략임을 간파했다.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전쟁이 장기화되면 백성들의 원망으로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명성이 추락할 것이다. 만약 전투에서 패배하면 그 패배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회군하여 정변을 일으키는 편이 났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성계는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두 번째 직관력은 회군 시점에 관한 판단인데 이는 가히 예술의 경지라고 볼 수 있다. 이성계가 주장한 ‘요동 정벌 4대 불가론’ 중 세 번째인 ‘명과 싸우는 중에 왜구가 침략할 것이다.’라는 예상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이성계는 왜구 진압에 수도방위부대 상당수가 출병할 것이고,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개경을 함락시키는 것을 최종상태로 회군 시점을 선정했다. 이성계가 이런 예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상황에서 조금 물러나 지금 자신의 부대가 어느 선상에 있는지, 미래의 변수는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정확하게 직관했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리더였다.

② 10·26사태, “유턴해서 육군본부로 가”, 김재규는 상황을 판단하는 직관력이 부족했다.

10·26사태 때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저격한 후 현장 상황을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 총장과 함께 중앙정보부로 가다가 차를 돌려 육군본부로 갔다. 이 유턴으로 그의 인생은 역사와 함께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만약 중앙정보부로 가서 사태 해결을 지휘했으면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했을 것이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무시를 당하고 반감을 품은 고위관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실제로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한 고위관료는 “차지철이 그럴 줄 알았어!”라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의심하기는커녕 차지철의 소행이 틀림없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김재규가 육군본부로 가는 순간 계엄령 선포논의 과정에서 대통령 시해범이 김재규라는 것이 드러났고 곧장 체포되었다. 
김재규의 직관력을 보면 상황판단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재규는 군을 장악할 수 있는 육군본부가 훨씬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육군본부에서는 상황을 조작하거나 자신의 행위를 보호해 줄 그 어떤 수단도 동원할 수 없었다. 중앙정보부에서라면 권력을 이용해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③ ‘12.12 군사반란 시, 정병주 특수전사령관은 사람을 읽는 직관력이 부족했다.

1979년 12월 12일, 반란군은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기 위해 1공수여단을 이동시켰다. 이에 진압군 측인 정병주 특수전사령관은 9공수여단을 출동시켰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보면 진압군 측 9공수여단이 먼저 도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반란군 보스 전두환은 신사협정이란 것을 제안한다. “9공수를 철수시키세요. 그러면 우리도 1공수를 철수시키겠습니다.” 정병주 사령관은 고민했다. ‘1공수와 9공수가 서울 한복판에서 서로 교전을 벌이면 아군끼리 전쟁이다.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육군본부를 통해 9공수의 복귀 명령을 지시했다. 하지만 전두환은 1공수를 그대로 서울로 진입시켰다. 전두환의 거짓말에 속은 것이다. 그날 밤 반란군은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장악했다. 이것으로 12.12. 군사반란은 반란군의 승리로 끝났다. 
정병주 사령관의 직관력을 보면 사람을 읽는 능력이 부족했다. 휘하 4개 공수여단 중 3개가 이미 반란군에 가담했고 이들은 모두 군내 비밀 사조직인 ‘하나회’였다. 부하들의 배신을 감내하는 고통을 당하기 전에 자신의 조직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끼고 읽었어야 했다. 또한, 전두환의 거짓말을 의심하고 이에 대비한 대책을 수립했어야 했다. 직관적으로 의심이 들면 확인하는 절차와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하게 되어있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점에서 판단하기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이 직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리더의 사람을 읽는 직관력이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존 맥스웰(John C. Maxwell)은 <리더십 불변의 법칙>에서 리더의 직관력은 다섯 가지를 읽는 능력이라고 했다. 첫째, 상황을 읽는 능력. 둘째, 트렌드를 읽는 능력. 셋째, 자원을 읽는 능력. 넷째, 사람들을 읽는 능력. 다섯째, 자기 자신을 읽는 능력이다.
이성계는 상황을 읽는 능력과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리더였다. 반면에 김재규와 정병주는 상황과 사람을 읽는 능력이 부족했다. 어떤 현상의 연장선에서 유턴을 결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는 아쉬움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교훈을 도출한다. 리더는 조직 발전의 촉진자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더의 직관력이 중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당신은 위 다섯 가지 직관 능력 중 몇 가지를 가지고 있는 리더인가?

송은섭 작가 seop2013@hanmail.net

송은섭의 리더십이야기

인문학과 자기계발 분야 전문 작가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마흔, 인문고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열다>, <지적대화를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 등이 있다. 경기대 외교안보학 석사,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유튜버(작가 조바르TV), 팟캐스트(책 읽는 시간)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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