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보다 더 무서운 리더
적보다 더 무서운 리더
  • 송은섭 작가
  • 승인 2022.03.24 0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리한 작전으로 5만의 부하를 굶어 죽게 만든 ‘무타구치 렌야’
조직보다 개인감정으로 동북아 최고 함대를 전멸시킨 ‘원균’

손자병법 제1편 ‘계(計)’에는 전쟁을 하기 전에 반드시 가늠해야 할 칠계(七計)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중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리더에 관한 내용이다.
“첫째, 군주 중에 누가 도를 갖추었는가? 둘째, 장수 중에 누가 더 유능한가?”

손자는 리더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전쟁을 할지 말지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했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국가의 존망과 부하들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능한 리더는 적보다 더 무섭다.’라고 했다.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보자.

무타구치 렌야,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리더

“일본인은 원래부터 초식동물이다. 풀 뜯어 먹으며 전진하라!”
“임팔작전의 실패는 내 잘못이 아니다. 부하들의 잘못이다.”

 
무타구치 렌야는 태평양전쟁에서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장군으로 유명하다. 연합군 입장에서는 그의 무능함으로 인해 전쟁 종식을 앞당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1943년 3월, 무타구치 렌야는 버마(현 미얀마) 방위를 담당하는 제15군 사령관으로 승진했다. 이때 영국군이 인도로부터 월경하여 버마의 일본군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무타구치 렌야는 사단장 시절 본인이 반대했던 인도 진공작전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밀림과 산악지역에서의 보급이나 병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전계획을 세웠다. 휘하 부대장들이 작전을 반대했으나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예상대로 밀림 지역을 통과하면서 탄약이 떨어지고, 보급이 끊겨 3개 사단이 아사 직전에 놓였다. 휘하 사단장의 작전 중지 건의에 그의 명령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31사단장 : 보급이 불가하여 더 이상 전진이 어렵습니다. 후퇴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무타구치 렌야 : 일본인은 원래부터 초식동물이다. 풀 뜯어 먹으며 전진하라!

31사단장 : 탄약이 떨어져서 영국군과 교전이 어렵습니다. 후퇴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무타구치 렌야 : 탄약이 없으면 칼로 싸우고, 칼이 없으면 주먹과 발로 싸우고, 주먹과 발이 없으면 이빨로 물어뜯어라!

31사단장은 무타구치 렌야가 보낸 참모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의 적은 영국군이 아니다. 바로 15군, 너희들이다.” 이후 31사단장은 독단적으로 철수를 결정했다. 
결국, 임팔작전은 아사자 5만, 내부 분란 등으로 영국군에게 대참패를 당하며 끝났다. 이후 무타구치 렌야는 부하였던 31사단장을 정신병으로 몰아세워 본국으로 소환되게 했으며, “작전의 실패는 내 잘못이 아니다. 부하들의 잘못이다.”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열린 전범 재판소에서 일본의 A급 전범들 대부분은 교수형 또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무타구치 렌야는 5만의 부하를 굶어 죽게 만들어서 일본의 패망을 앞당겼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이후 싱가포르 법정에서는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렇게 무능한 무타구치 렌야가 어떻게 장군까지 승진할 수 있었을까? 태평양전쟁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학연, 지연을 중시하던 당시 일본군 대본영의 조직문화와 아부에 능했던 무타구치 렌야의 쇼맨십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인연, 아부, 쇼맨십으로 포장된 무능한 리더는 조직과 부하에게 치명적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순신과 원균의 행적을 비교해 보면 유능한 장수와 무능한 장수의 차이가 극명하기 갈린다. (영화 ‘명량’ 중에서)
▲이순신과 원균의 행적을 비교해 보면 유능한 장수와 무능한 장수의 차이가 극명하기 갈린다. (영화 ‘명량’ 중에서)

원균, 무능함과 사사로운 감정으로 동북아 최고 함대를 전멸시킨 리더

“나는 통제사가 된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이순신에게 복수해서 상쾌할 뿐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행적을 비교해 보면 유능한 장수와 무능한 장수의 차이를 알수 있다.

이순신 : 4명의 부하를 살리겠다고 전군을 동원하여 섬을 포위하고 무력시위를 했다.
원균 : 혼자 먼저 살겠다고 400여 명의 전우를 버린 채 도망갔다.

이순신 : 제승당에서 참모들과 전술토의를 했으며 심지어 지나가던 병사까지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원균 : 제승당의 담장을 높이고 기생을 들여 주색에 빠졌으며 아무도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순신 : 수시로 부하들과 활을 쏘며 전술을 토의했다.
원균 : 수시로 술을 마시고 부하들의 건의를 무시했다.

이순신 :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을 울돌목이라는 지형을 이용해 대승을 거두었다.
원균 : 이순신이 이뤄놓은 동북아 최고의 함대를 적에게 속아 기습을 당해 괴멸시켰다.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균의 경력을 보면 무과에 급제한 이후 변방의 오랑캐를 무찌른 공으로 특진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용맹한 장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과의 공로 다툼과 불화로 그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이순신에 대한 열등감과 인성 부족은 그가 이순신을 대신하여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을 때 한 말에 잘 나와 있다. 친인척이 축하의 말을 건네자 원균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통제사가 된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이순신에게 복수해서 상쾌할 뿐이다!”

원균은 감정조절에도 실패한 리더였다. 칠천량 해전을 앞두고 도원수 권율에게 불려가 출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곤장을 맞았다. 원균은 이기지 못할 전투라는 걸 알면서도 수치심에 술을 마시고 감정적으로 출전 명령을 내렸다. 결국, 일본군의 유인 작전에 빠져 크게 패하고 도망가다가 죽었다. 무능하고 감정적인 원균을 보며 부하들은 적보다 더 무서운 리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반대로 원균은 오직 개인의 감정이 중요했고 부하는 안위에도 없었다.

적보다 더 무서운 리더는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수 있다. 무능한데 학연, 지연, 아부 등으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 능력은 있는데 인성이 부족한 사람 등등. 어떤 이는 아부도 능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황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정확한 업무처리로 인정받는 사람, 조직과 부하를 위하는 마음이 늘 우선인 사람은 아부하지 않는다. 굳이 아부하지 않아도 신뢰를 받기 때문이다. 우리 조직에는 어떤 리더가 포진하고 있는가? 나는 적보다 더 무서운 리더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가? 윗사람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부하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지금 당신이 리더라면 그들의 뒷담화에 주목해보자. 
“우리 oo 님은 적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야. 결국, 망할 거야. 그전에 이직 준비하자고.”

송은섭 작가 seop2013@hanmail.net

송은섭의 리더십이야기

인문학과 자기계발 분야 전문 작가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마흔, 인문고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열다>, <지적대화를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 등이 있다. 경기대 외교안보학 석사,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유튜버(작가 조바르TV), 팟캐스트(책 읽는 시간)로도 활동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