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와 외상후성장
트라우마와 외상후성장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03.04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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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으로 노출되는 단어나 말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을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신의학 용어가 하나 있다. “트라우마”
정식 명칭은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심각한 사건이나 행동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의미한다. 

정신적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선 여지없이 나오는 전문적 용어라 지금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평범한’ 말이 돼 버렸다. 물론, 나도 의학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으니 트라우마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말은 이미 낯선 단어는 아니다.

괜히 불이나 물을 보면 무서워한다던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등은 아마 예전에 겪었던 사고로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막연히 ‘내가 왜 이렇지?’, ‘왜 불안한지?’ 이유를 몰랐던 것이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알게 된 후부터 어느 정도 원인을 알게 된다. 

그런데 원인을 알고 난 뒤라서 속이 시원할까? 나의 삶이 개선될까? 괜히 다른 이유도 트라우마의 틀에 가둬놓고 이해하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지는 않을까?

마찬가지로 지금의 나쁜 상황을 모두 지난날 겪었던 불우한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면 거기에 갇혀버려 더 나아갈 수 없는 ‘어쩔 수 없음’이 생겨버린다. 이미 일어난 과거의 상황은 바꿀 수 없는데 그 과거에 매몰돼 현재를 살고 있다면 극복의 의지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심리학 용어 중에 트라우마만큼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지만, 전혀 반대의 뜻을 가진 용어가 있다. 외상 후 성장(PTG). 외상 후 성장(PTG: post traumatic growth)은 끔찍한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사람들 중에 나타났는데, 이들에겐 고통이 오히려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줬단다. 

그들의 객관적 상황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는 조건이지만, 이후 잘 적응해서 원래의 건강한 삶을 회복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강한 힘이 있었기에 외상 후 오히려 성장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하는 비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지나친 낙관주의도, 낙천적인 사람도 아니다. 다만, 자극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 어떤 사람은 트라우마를 겪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외상 후 성장을 할 수도 있다. 즉, 트라우마나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하는 부류는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외상 후 성장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기 암이지만 극복하고 누구보다 더 잘 사는 사람은 이제 방송꺼리도 안 되고, 사고로 신체기관을 잃었어도 누구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방송에서 다룰 수 없을 만큼. 

하지만, 언론에선 트라우마 얘기만 자주 나온다. 그러면서 지금의 불안한 반응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위로하는 데 그친다. 위로가 더 나은 삶으로 개선해준다는 보장은 없이. 

그런데 만약 외상 후 성장도 트라우마만큼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쁜 일을 겪었어도 누구나 트라우마뿐 아니라 외상 후 성장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위로받고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새, 방송환경도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우리 마음엔 트라우마는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고, 대신 외상 후 성장을 보인 사람은 예외적인 상황, 특별한 사람이 돼 아직도 종종 방송을 타기도 한다. 방송인의 한 사람으로 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는 트라우마를 가질 수 있고, 누구는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할 수도 있다. 대부분 보통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고, 외상 후 성장을 보이는 사람은 특별한 몇몇 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 

설령 통계상으로 트라우마보다는 외상 후 성장을 보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해도 그 수치가 얼마나 허수인지는 누구나 잘 알지 않는가? 아무리 1%로의 확률이 있다고 해도 내가 그 1%에 속한다면 나에게 그 확률은 100%가 되는 법.

1%의 트라우마이든, 100%의 외상 후 성장이든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삽화/박상미
삽화/박상미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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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03-11 15:42:36
글을 읽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외상 후 스트레스'에는 동정여론이랄까? 주위의 걱정과 안 됐다는 시선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마음은 '외상 후 성장'이 머릿속으로는 이해 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라... 공감 되는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