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입니까?
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입니까?
  • 김민희 배우
  • 승인 2023.06.1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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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내달려 살아가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마련이다. 그냥 스러지듯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수없이 나를 흔들고, 그런 나약한 마음이 들 때는 간혹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을때 나조차 조금 쉬어도 괜찮다고 토닥여주지 않는다면 인생살이가 너무 치열하고 각박해 진다.

지친 일상에 나를 위로하는 시간은 무조건 필요하다. 지금껏 바쁘게 달려온 삶을 위로하고 치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은 먼 길을 힘내 다시 걷거나 달릴 수가 있겠는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자꾸만 미뤄두고 제쳐두는 나를 향한 위로와 힐링에 관하여 우리는 올곧이 마주해야 한다.

영화 '아비정전'에서 아비(장국영)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에 꼭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땅에 내려앉지 못하는 발 없는 새라 할지라도, 지치면 바람 속에서라도 쉰다. 날갯짓을 완전히 멈출수 없다해도 바람속에서 스스로의 안식처는 갖는 것이다. 바람을 타고 쉬는 그 시간이 바로 힐링의 순간인 것이다. 발 없는 새처럼 우리도 숨을 고르는 치유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스페인어로 퀘렌시아라는 말이 있다. 다시 기운을 되찾는 곳을 이르는 말인데, 사전에는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나 그러한 공간을 찾는 경향이라 명시되어 있다.

퀘렌시아(Querencia)는 '애정, 애착, 귀소, 안식처' 등의 뜻을 지닌 단어다. 투우 경기 중 소가 본능적으로 피난처로 삼는 곳을 그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그 공간에서 숨을 고르는 소를 투우사는 공격하지 않는다. 

발 없는 새의 바람 속과 투우장 소의 퀘렌시아는 안전한 재충전을 의미한다. 나 자신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돌아갈 수 있음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게 바로 퀘렌시아다. 

"나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
가장 나 자신답고 나 자신일 수 있는 곳은?
너무 멀리가기 전에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보지 않는다> 중에서-

'너무 멀리가기 전에'라는 말이 와 닿는다. 때때로 스스로를 잃고 방황하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그러나 너무 늦지않게 자신을 되찾고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압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함은 무척이나 설득력 있다.

자신만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공간은 오직 나에게 해당하는 것이므로, 스스로 찾아야 한다. 대단하고 아름다운 곳이 아니어도 내 마음 한 구석 편안해지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곧 퀘렌시아다.

복잡한 세상에서 일상을 급작스럽게 뒤틀어야 한다면 부담스럽겠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으면 된다. 커다란 용기도 필요없고, 나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나만의 장소이면 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안식처는 가정이다. 나를 제일 잘 알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 그들은 삶의 뿌리이며 기쁨 중 가장 큰 기쁨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관계란 그 자체가 이미 배터리 소모를 일으킨다. 어떤 사람과의 인간관계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처를 넘어 피난처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가진 힘은 나의 숨을 고르고,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의지해 일어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때로는 홀로서기가 필요할 때도 있지 않은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

나만 아는 작은 계단 한 구석에서 10분의 시간동안 내 숨소리만 듣는 것일 수도, 언젠가 여행했던 곳에서 며칠간 혼자 쉬는 것일 수도, 그 무엇일 수도 있다. 평생을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서, 내가 나에게 내어주는 작은 시간과 공간쯤 할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완전 방전되기 전에,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우리에게는 재충전이 필요하다. 나만의 퀘렌시아에서.
그렇다면 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중에서-

김민희 배우 calnews@naver

배우 김민희

만 6세인 1982년 KBS 성탄특집극 《집으로 가는 길》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에 들어선 아역스타 출신이다. MBC베스트극장에서 다수의 주인공 역을 시작으로 SBS 대하드라마 《여인천하》, MBC 주말연속극 《여우와 솜사탕》, 등을 통해 안방극장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특히 1997년 MBC 일일연속극 《방울이》에서 주인공인 방울이 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은 연기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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